<보통의 존재> + 이석원 작가와의 티타임 |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지난 해 GMF 이후 나의 엠피3에는 앨범 하나가 들어가서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오만가지 음악을 엠피3에 넣었지만 1년이 넘도록 가장 빈번하게 플레이되는 앨범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각종 오에스티와 제이슨 므라즈, 다이엘 파우터, 브로콜리너마저, 그리고 투피엠 ㅋㅋ
이 얘기를 쓴 이유는 홍보의 목적도 있다)
한번 들으면 끝까지 듣게 되는 앨범이며 가끔 조용한 곳을 찾아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도 만드는 앨범이다
바로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책 얘기를 해야 하니깐 음악 얘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지난 일년 동안 언니네 이발관 밴드의 홈페이지에 가끔 들락거렸는데
이곳에는 언니네 이발관의 목소리마담(거의 공식적인 얼굴마담은 능룡씨니깐 ㅋㅋ)인 이석원씨의 일기가 가끔 올라온다
오늘은 올라왔나? 하고 들러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 그의 일기는 길지 않지만 가볍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지만 또 가볍지 않아서 한번 읽고,
다음에 가서도 또 한 번 다시 읽고 이런 재미가 있었다
곶감 빼먹듯 아주 예전의 일기를 들춰보기도 했고
이렇게 일기에 있던 내용들과 그가 내놓지 않았던(그 일기를 다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글들이
활자화되어 병아리색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고,
어제 들른 교보에서는 부문4위, 종합 13위(14위?)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에 들려지고, 읽히고 있다
언니네의 많은 팬들(뭐 올해 GMF 때 보니 거의 아이돌 수준 ㅋㅋ)이 사서 읽었을 것이며,
그 친구들이 선물로, 또는 강요로 읽었을 것이긴 하지만 책을 통해 작가 이석원을 만나는 사람도 꽤 되겠지
그런 사람들은 이 사람이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음악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라,
그런 경험을 한번쯤은 해 보고 싶기도 하고,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가 굉장히 궁금하단 말야
보통의 존재 책을 사서 읽고, 월요병 콘서트를 찾아가서 공연을 보고,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일기를 읽고
한쪽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중 드디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기회를 잡았다!
교보문고 인터넷사이트에서 한 작가와의 티타임 이벤트!
10명만 뽑는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응모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들로 뽑힌 분들이 못 온다고 하여
마지막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실 나도 친구도 데려갈 수 없고 생전 첨 보는 사람들과의 자리가 어색하기도 하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는 것이 어려워져서(흑)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깐!
네! 저 갈 수 있어요!!!
회사에서 하루종일 조바심내다가(5시 넘어서 전화올까봐 -.-)
일찌감치 나와서 찾아간 삼청동은 날이 차가워져서 그런지 예전보다 조금 조용한 분위기.
게다가 작가와의 만남이 있던 팔판동까뻬는
메인스트릿에서 살짜쿵 벗어난 곳에 있어서 훨씬 조용하고 뭔가 나만 아는 공간! 이런 분위기.
(그러나 나만 아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는 이후 자리가 없을만큼 붐비는 상황으로 인해 깨지고 만다
거기 인기 좋더라구)
까페에 들어서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드디어 시작된 작가와의 티타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처음엔 모두 조용하고 과묵모드로 얼굴만 쳐다보며 실실거리다가
출판사의 마케팅 담당자 다다님과 이석원 작가님의 대화 "엄마 땜에 미치겠어요"로 말문과 웃음보가 함께 트였다
아무래도 가장 연장자인듯 보이던 나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소녀까지
열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
책에서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요? 라는 무난한 질문부터
책에 나오는 여자는 대체 몇명입니까?! 라는 농반진반의 짖궂은 질문까지
어떤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고
어떤 이야기는 웃음이 빵 터져나오기도 했다
무슨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를 적는 것은
내가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 이야기를 적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기 때문에 하지 않겠어
(뭐 이건 전해야만 해! 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정보성을 가진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아마 다른 인터뷰에서도 봤을법한 이야기들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 기억을 못한다는;)
작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처음 가 보았기 때문에
다른 자리와 비교를 할 수는 없겠고.
일단 어제의 그 자리는 굉장히 따뜻하고 훈훈한 자리였다는 느낌이 가장 컸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사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그랬는지
중간중간 말이 끊어지는 시간에도 그렇게 많이 어색하지는 않아서 그것도 신기했고 말야
나는 솔직히 언니네 이발관을 알게 된 다음에 이석원씨를 볼 때마다
와, 이 사람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는데
어떻게 보면 어제가 제일 놀란 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약간 말걸기 어려워 보이고 조용조용 딱 할말만 할 것 같은 그런 새초롬한 느낌이었는데
의외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시더라구 ㅋㅋ
건강치 못한 몸을 이끌고 바쁜 홍보 일정을 소화하면서(어제도 링거 맞고 왔다던데)
굉장히 정신없고 힘든 하루를 보낸 저녁이었을텐데
열명이 넘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억해주고 이야기를 많이 안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질문도 해 주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와, 이 사람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느낌을 받았;
나 너무 차가운 도시남자로 그를 이미지 메이킹했던 것인가 ㅋㅋ
음악이 진짜 너무너무 힘이 든다는 그의 말이 참 슬프기도 했고
글을 쓰는 것이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참 부럽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 밥벌이라는 게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은 아니겠지만
(뭔가 목적을 가진 행위는 목적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움이 반감되므로)
또 그렇게 죽도록 싫고 힘든 일은 아닐 수 있도록 나도 뭔가를 찾아내고 싶다, 하는 마음도 같이 들었으니까.
사소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낸다면
나도 그게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망갈 수 있는 도피처를 얻은 듯 든든할 것이고,
또 하루를, 한 달을, 한 해를, 그리고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겠지
그것이 꼭 거창한 일이 아니라 혼자 끄적거리는 블로그질이 될 지라도.
우리들의 질문을 듣고 틀에 박힌 질문이 아니라 하나하나 생각해서 대답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상처였을 수도 있는 일들도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사람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 일을 제대로 대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도.
(아 이런 건 정말 부럽단 말이얏!)
내가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단 한가지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잘 쓰는 것도,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은 하이킥의 정해리 수준(강아지를 그리면 똥이라고 보이는 수준 ㅠㅠ)이며
노래를 만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 부르는 것도 뭐 ㅠㅠ
이런 수준이라 나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걸 잘 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우러러봄과 함께 어느 정도의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하고.
나에게도 하나님이 이런 재능 중 하나만 허락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맨날 몸부림치고 있는데
왜 이 사람에게는 두 개, 아니 세 개나 재능을 주셨는가!
(음악을 만드는 재주, 부르는 재주, 그리고 글재주까지 ㅠㅠ)
나도 뭔가 숨겨진 재능이 있겠지? 죽기 전엔 찾을 수 있는 거겠지? 흑..
암튼 나만의 아이돌이었던 언니네이발관의 석원씨와 말 한마디 섞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쇤네는 참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다. ㅋㅋ
그냥 대화 한번 해 보고 싶었어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냐고? 아 예 옳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과는 술마시면서(그러나 둘 다 술은 못 마심 ㅠ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달까.
이전에 이런 거 해 보고 싶었던 사람으로는 유희열이 있음)
두시간 정도 계속된 이야기는 머뭇머뭇 끝이 나고
다들 머뭇거리며 책에 싸인을 받고
또 머뭇거리며 찻집을 나와 각자 집으로 향했다.
정말 나오면서 혼자 피식 웃었던 게, 찻집에서 다 같이 나와서 앞에서 인사를 나눴지만
석원씨는 혼자 열심히 걸어가고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던 우리들 ㅋㅋ
보통 다른 가수-팬들의 관계는 왠지 따라가면서 헤어지기 직전까지 얘기하고 어필하고 할 텐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쳐다만 볼 뿐인지(아 예 저는 나이도 있고, 쪽팔려서 못했습니다)
저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들 그냥 쳐다만 봤다는...
그리고 큰길에 나올 때까지 우리끼리도 머뭇머뭇 소심한 대화를 나누며 왔다는...
이거 어제의 이 행사 컨셉은 머뭇머뭇 쭈삣쭈삣이었던 걸까?
대화도 머뭇머뭇 시작해서 그렇게 끝나더니 말야
싸인을 받으려고 들고 온 책을 집에 가는 길에 다시 한번 읽었는데
나는 역시 이 책이 너무 재미있고 슬쩍슬쩍 웃음이 배어나온다
남들은 다 처절한 이야기라는데 왜 그러지?
난 아무래도 더 처절한 인생을 살았나부다
어제 찍힌 사진 두장 올리고 나는 이만.
기대하지도 못했던 석원씨와의 투샷( 옆사람을 잘라내서 얻어낸 투샷이지만: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사진이 올라가는 건 싫잖아)
그리고 전체 사진. 얼굴들을 모자이크처리해주고 싶지만 티스토리에선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