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하지 않은 대중,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대중 |
그림출처 : yes24 홈페이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어야지, 하고 벼르다가 이제서야 읽었는데
이제서야 읽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지금 읽어서 더 다가오는 게 많으니깐.
표현의 자유 이야기라든지, 여론의 조작에 대한 이야기, 머 기타 등등
요즘 우리의 모습이랑 엮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암튼 읽으면서 아 그래, 맞아 이렇게 맞장구를 한참 치다가
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집에 가서 베껴적어둬야지 했는데,
어제 저녁 복통 크리(아 이 복통에 대한 투병기도 한번 작성해줘야되는데) ㅠㅠ
그리고 오늘은 당연히 책을 안 들고 왔기 때문에.
게다가 저작권법 관련해서 여기저기 말이 많아서
그대로 베끼는 것보다는 대충 내가 요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정치인과 여론을 이끈다고 여겨지는 지식인들은 대중을 우매하게 여겨
매스 미디어 등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대중은 그리 우매한 존재가 아니고 스스로 생각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
촘스키가 말한 사례를 보면,
베트남전에 대해 여론에서는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러 간 거다, 라고 계속 미화했지만
당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베트남전을 반대했다
베트남전이 정당화될 수 없는 다른 나라에 대한 간섭이며, 용인될 수 없는 무력도발이라는 걸
아무리 미디어가 감추고 화장시켜줘도 대중은 다 알고 있었단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국가에서, 그리고 대기업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대중을 현혹시키고
먹고 사는 문제를 쥐고 흔들어 이에 대한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수 많은 대중들 중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공론화하게 되며,
이런 것들은 퍼지고 떠 퍼지고 공유의 과정을 거쳐 대중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불합리와 이에 대한 저항이 있긴 했지만
이것이 혁명으로 이어져 권력의 전복을 가져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무엇보다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
예를 들면, 노동환경의 악화에 따라 노동자들이 점점 자신의 근무환경에 불만을 갖게 되고,
사용자측에 의견을 개진하고, 협의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되지만
아무도 이 총대를 메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라는 존재는 사용자에게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게다가 노동시장이 훨씬 탄력적인 미국에선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바로 직장을 잃거나 그 외의 다른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
성공해서 노동조합을 설립한다고 해도, 실제로 총대를 처음 멘 사람이 그 열매를 따 먹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자신이 맛보지 못할 열매를 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크나큰 비용을 지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슴속에 품고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란다.
생각해 보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하나의 문제,
그리고 과연 자신의 희생이 그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를 환신할 수 없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인 것 같다
상대방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자신이 속한 그룹이 크면 클수록 한 사람의 희생은 묻혀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움직인다고 해결되는 건 없잖아, 라고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닐 터인데...
지난한 싸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예스24에서 한 대목 베껴왔다. 본문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환경재앙으로 인해 치루어야 할 비용은 현재의 시장에서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미래 세대의 몫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은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는 셈입니다. - 노암 촘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