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빌려 읽고 서점에 앉아 완독.
그러다 보니 읽으면서 하나하나 곱씹기 보다는 그냥 주욱 읽어나가기만 해서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찬찬히 읽어볼래? 라고 물어본다면 아니, 라고 대답할 듯
이 책을 쓴 노희경은 그사세를 쓴 노희경이 아니라 꽃아름을 쓴 노희경 작가같다
달디단 연애얘기나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일에 몰두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지만 지지고 볶고 미워하다가 화해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고
갑자기 친해지고 또 스르르 멀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머라고 해야할까 약간 현역이 아닌 듯 관조적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읽으면서 확 와닿는 게 아니라 그냥 아 그렇구나, 정도의 느낌 정도
그치만 중간중간 나오는 그사세의 나레이션 부분은 참 좋았다
그사세 볼 때도 그 나레이션들이 좋았거든
내가 지금 애한테 무슨짓을 하는건지
눈도 아파죽겠는데 나는 왜 애랑 헤어져서
더 외롭게 내 무덤을 파는건지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젊어서 힘이 남아돌아
쓸데없는짓 한다 하시겠지
근데 어떡해...난 젊은데
그리고 보면서 가장 나의 마음을 깊숙히 찌른 글 하나.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 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