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 촉촉한 눈에 서린 웅변조의 매력 - 우리에게 스타는 무엇인가? (6) 최민식 |
그는 보통 사람의 감정도 서너 배 이상 증폭해 담아내는 인물이다. 그런 증폭된 에너지야말로 실은 심심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내면에 담긴 욕망이기도 할 것이다.
최민식은 늘 ‘연기를 한다.’ 배우에게 이게 무슨 실례의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에게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극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요즘 나오는 CF, ‘거치른 들판으로 달려가자’ 운운하는 텔레비전 CF를 봐도 그는 일상의 친숙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는다. 뭔가 과장된 톤으로 이를 꽉 물고 그는 한 친구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준다. 다소 과장된 웃음을 띠는 그의 얼굴 위로 이 노래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이 돼줬으면 좋겠습니다 운운하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이걸 다른 배우들이 했으면 더 눈뜨고 보지 못했을 것이다. 최민식이 하므로 용서가 되며 심지어 감화도 된다.
그건 최민식의 눈 때문이다.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다. 아주 충분히 감정을 머금은 눈으로 역동적으로 그의 얼굴은 움직인다. 웃을 때나 울 때나 무표정할 때나 그의 눈동자는 늘 촉촉하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그의 눈 주위에서 펴져나가는 표정은 아주 조금씩 희로애락을 변주하는 것같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정신 없이 왁자지껄 마시다가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는 그의 눈을 보며 갑자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별로 말하지 않아도 그의 눈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쓴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눈은 어떻게든 그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
최민식의 눈은 웅변조다. 그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빠지고 생기를 잃어버렸을 때조차 그건 비탄이나 슬픔 따위의 뭔가 훨씬 극적인 감정으로 이동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의 눈동자는 그의 삶의 일상적인 고요를 거부하고 있다.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을 때 배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그의 스크린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전 존재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는 부부 싸움을 하면서도 눈동자에 극적인 감정의 고저를 가파르게 실을 것이다. 그게 타고난 배우로서의 그의 에너지에 맞는다. 그의 눈이 그 에너지를 증거하고 있다. 그 바탕 위에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그게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인생이 가면을 쓴 연극이라는 걸 그처럼 실감나게 보여 주는 사람도 드문 것이다.
최민식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구로아리랑>에서 사용자 편에 선 작업반장 역으로 나왔을 때 그는 이목구비 단정한 청년이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반듯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로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는 멀리서 수인사만 하고 지내면 딱 좋을, 그러나 딱히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는 올바른 이미지의 청년일 뿐이었다. 아직 그런 그의 그릇에서 복합적인 감정의 주름을 꺼낼 여유가 없었던 한국영화는 젊을 적 그의 미모에서 단물만 빨아먹었다. <우리 사랑 이대로>와 같은 멜로드라마에서 그는 노출을 핑계로 사랑을 들이대는 상투적인 에로영화의 경계에서 곡예하는 광대로 전락했다.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쿠숑이란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을 때조차도 그의 연기는 꿰어 맞춰진 정형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젊음이 사라지고 미모가 퇴색했을 때 그의 존재감도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텔레비전 시트콤에서 망가지며 대학 시절 햄릿 역으로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는 전설을 뒤로 남기고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통해 마모된 불우한 배우로 회자됐다.
<넘버 3>에서 한석규의 상대역인 골통 검사로 나와 침을 퇴퇴 뱉으며 정의감이 아니라 직업적 경쟁심에서 깡패와 맞서는 다혈질 인물을 연기했을 때 그의 연기는 또박또박 발음하는 말 속에 대단한 에너지를 싣고 있었다. 이 기운이 대다수 영화와 드라마에서 봤던 정형화된 검사의 틀을 깨고 그의 영화 속 역할에 인간적인 온기와 그늘을 입혔다.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가 맞물리며 앙상블 드라마로 전개된 이 영화에서 그러나 그의 눈은 확실히 각인될 기회가 없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전사로 남하한 <쉬리>의 극중 인물을 통해 그는 자기 진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남한 첩보원과 대결하는 이 인물은 관제화된 북한군의 이미지를 단박에 깨트리는 흡입력을 발휘했고 그건 클로즈업으로 잡힌 최민식의 얼굴, 특히 눈 때문이었다. 적당히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하는 주름 사이로 움푹 패인 그의 눈동자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기계처럼 앞을 보고 돌진하는 전사의 결기와 피로를 동시에 드러냈다. 그것은 살인 기계의 정체성을 나약하게 훼손시키지 않고서도 동시에 인간의 얼굴을 드러내는 대단한 유혹의 산물이었다. 화면에서 동정받을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악인이지만 매력적인 악인을 연기한다고 하는 난이도 높은 호소력을 이뤄냄으로써 그는 오로지 화면에 배당받은 일련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걸 해냄으로써 세련된 대중 영화에 어울리는 마스크의 위력을 전해줬다. 최민식이 이 영화에서 보여 준 것은 가면이지만 그 가면 뒤에서 뭔가 인간적인 감정을 유추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파이란>에서 가장 화려하게 전시된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파이란>은 드문드문 드러나는 이야기의 인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최민식의 좌절과 비탄과 비겁과 회한이 담긴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이강재란 삼류 인생의 면면을 통해 관객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간다. 절정부의 해변가 장면에서 얼굴도 몰랐던 여인이 자신을 연모하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으며 누구로부터 사랑받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중년의 추레한 남자가 꺼억꺼억 흘리는 눈물을 쏟게 될 때 최민식의 가면은 엄청난 인간적 감정을 싣고 감춰둔 무거운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를 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장면에서 그가 흘리는 눈물은 찌르면 반응하는 차원의 껍데기 감정이 아니라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자기 속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리는 온갖 회한의 찌꺼기들을 일제히 토해내는 눈물, 한번 인생을 잘못 산 자의 돌이킬 수 없는 피로를 실은 눈물이었으며 그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고 외치는 오래된 유행가의 노래 자락과 맞먹고 어쩌면 넘어서는 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눈물의 질감은 저잣거리에서 뒹굴며 자기 예술 세계를 완성하는 <취화선>에서 속인과 예술가의 경계에 걸쳐 있는 장승업의 고뇌로 어렴풋이 나타났고 박찬욱의 <올드보이>에서 다시 한번 강력한 웅변조의 호소력으로 다가왔다. 영화 초반 이야기의 단초를 던지는 내레이션으로 최민식의 목소리가 깔릴 때 관객의 지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그의 고독하고 비장한 목소리는 15년간 감금당한 사연을 지닌 주인공의 오래된 침묵으로 묻혀 있다가 대단원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로 거의 감정의 태풍 상태를 경험하는 것같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주위와 단절된 채 자기 정체를 회의하게 된 그가 마침내 알게 된 운명의 비밀 앞에서 마구 쏟아놓는 말과 눈물은 가슴을 베는 고통으로 이어지며 그는 혀를 자르고 한 됫박의 눈물을 쏟은 채 애원하면서 개처럼 기는 전대미문의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는 삶이 일종의 연극이라는 뻔한 명제가 실은 얼마나 격심한 에너지를 요하는 노역인지를 최민식 스스로 증명하는 스펙터클의 경지로 들어선다.
이 고된 삶의 노역을 가리키는 감정의 스펙터클, 주로 눈을 통해 전달되는 스펙터클이야말로 한때 전도 유망했으나 나락을 굴러 떨어졌고 다시 기적처럼 재기해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최민식의 밑천이다. 그의 영화가 딱히 흥행성이 보장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감정을 다 실을 수 있는 영화를 택해 최선의 퍼포먼스로 인생이 절망 힘든 감정의 노역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준다. 그의 연기가 심심한 일상에 갇힌 그렇고 그런 인물을 보여 준다는 것을 현재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그가 심상한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도 근원적으로는 그 인물에 웅변조의 정조가 흐를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의 감정도 서너 배 이상 증폭해 담아내는 인물이다. 그런 증폭된 에너지야말로 실은 심심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내면에 담긴 욕망이기도 할 것이다. 최민식은 우리 내부의 그런 폭발을 기다리는 단추를 대신 끄집어내 거기에 태연히 불을 붙이고 함께 감정의 자폭을 꾀하는 이 시대의 다이너마이트다. 그건 이 배우가 연기파라는 명예를 누리면서 기꺼이 오래 장수할 수 있도록 우리가 빌어 마지않는 그의 미덕이자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