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 톡 튀어나온 이마의 전도연 - 우리에게 스타는 무엇인가? (5) 전도연 |
그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일깨우는 ‘희망의 징표’이다. 평범함을 빌미 삼아 변화를 꿈꾸지 못하는 ‘안이한’ 우리들, 아까울 것 하나 없어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무거운’ 우리들, 언제나 말똥말똥 본전 생각하는 ‘비겁한’ 우리들에게 그녀는 톡 튀어나온 이마를 조악거리며 되바라지듯 말할 것 같다.
그녀는 가볍다. 글래머는커녕, 몸은 한 주먹도 안 돼 보인다. 조그만 몸매에 까무잡잡한 피부, 톡 튀어나온 이마와 뒤통수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용모의 그녀는 그나마 기품 있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비교를 위해, 작은 체구에 톡 튀어나온 이마를 가진 또 다른 배우 강수연을 한번 떠올려보자. 강수연의 잔뜩 힘이 들어간 눈, 그 눈에서 뿜는 카리스마, 게다가 꼿꼿하고 위엄 있는 자태 등등이 전도연에겐 일절 없다. 눈보다 입에 힘을 주는 그녀, 가늘게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으며, 뾰로통 입술 끝을 삐죽거리는 그녀는 하이 톤의 콧소리로 엥엥거리며 말끝을 올린다. “안녕하세요~ 전도연이에요~.”
<인어공주>시사회장에서 그녀를 보았다.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어린아이처럼 딸각거렸고 잠시 서있는 동안에도 어깨를 까딱거릴 만큼 산만해 보였다. 대개 여배우를 본다는 건 어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신인이나 조연의 경우에도 그녀들은 몹시 특별해 보인다. 집중된 인상을 풍기거나, 때로 외부와 어떤 경계가 쳐진 듯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종 연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배우 누구?’인지는 잘 몰라봐도, ‘여배우로구나!’ 하는 걸 먼저 알아채기도 한다. 그런데 전도연에겐 그런 게 없다. 얼굴이 알려졌으니 누군지 알아보는 것이지, 잠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를 판이다. 참 여배우 같지 않은 그녀가 우리 시대 최고의 주연 배우라니. 그녀는 마치 ‘프라다’ 가방 같다. 전혀 비싸 보이지 않지만 최고의 명품인 프라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명품’이라는 기이한 형용 모순에 둘러싸인 브랜드만큼이나 그녀의 매력은 불가해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주연 배우였던 건 아니다. 10년 전 TV드라마 <젊은이의 양지>(1994)에서 주인공의 동생이었던 그녀를 기억한다. 욕망과 격정에 들끓던 주인공들을 관조하고 기술(記述)하던 그녀는 별 개성 없는 평이한 인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천상 조연밖에 못할 그릇처럼 보였다. 그 무렵 또다른 TV드라마 <종합병원>(1994)에서도 의사를 짝사랑하는 새초롬한 간호사로 나왔었다. 좀 파격적인 노출 장면이 있었는데, 윗옷을 벗고 거울에 비친 자기 가슴을 만져보며 ‘내 가슴속엔 사랑이 아니라 암종(癌腫)이 자라고 있었구나’라고 독백하는 장면이었다. ‘조연치고 꽤 센데?’ 싶었다.
1997년에 <접속>이 개봉됐을 때만 해도 그녀는 별반 주목받지 못했다. 포스터만 봐도 당시 최고 스타 한석규에 비해 전도연은 많이 기울었다. 대단한 미모도 아니고, 섹시하지도 않고, 너무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과연 커다란 스크린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한’ 이미지가 이 영화가 전달코자 했던 ‘여인 2’의 머뭇거림에 적확했다. 그녀는 튀지 말아야 할 곳에서 튀지 않음으로써 조용히 빛났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었지만, 인공 누액을 넣으려다 획 집어던지던 그녀의 초조한 표정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그녀의 이 ‘평범한 외모’를 질료로 삼는 연기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에서 재현된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의 연기는 다소 혼탁해져 있었다. 무심해 보여야 할 장면에서조차 그녀의 자의식은 자꾸만 연기를 했다. 새글새글 웃음을 흘리고, 입술 끝을 쭈뼛거리며 부자연스럽게 눈치 보는 표정은 분명 ‘오버’였다. 담백하고자 했던 영화의 느낌은 깨소금이 둥둥 뜨며 느끼해졌다. 영화는 결국 ‘나도 나 좋다고 알짱거리는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접속>과 <나도 아내...> 사이에는 ‘두 개의 커다란 굴곡’이 있었는데, 감독은 그 굴곡을 무시한 채 초심을 기대하고, 그녀로서는 그 굴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두 개의 굴곡이란 <내 마음의 풍금>(1999)과 <해피엔드>(1999)를 말한다. 몇 개월 간격으로 두 영화가 개봉했을 때,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홍연’과 ‘최보라’가 같은 배우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약속>(1998)에서 ‘멜로 영화의 주연으로 손색 없음’을 증명한 바 있는 그녀였지만,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단연 그 이상이었다. 스물일곱 나이에 열일곱 소녀의 가벼운 몸놀림이 어쩌면 그리도 자연스러울까. 30년 전 산골 가시내의 촌스런 감정을 어쩌면 그리도 천연덕스럽게 뽑아내는가. 그대로 딱 홍연이 되고 만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노릇인데, 세상에나 <해피엔드>라니. <해피엔드>는 몸을 사리지 않는 화끈한 정사 신도 놀라웠지만, 불륜에 빠진 유부녀의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 표현이 더욱 놀라웠다. 그녀는 바람 피우다 죽는 역할인데도, 희한하게 관객의 감정이입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영민한 표정과 오롯한 자존심, 열렬한 욕망과 자욱한 불안이 매 장면마다 겹쳐졌다. 그녀는 똑똑하고 되바라졌다. 꼿꼿한 목선에 동그란 머리통을 까딱거리며 남편에게 짱짱거린다. 슬쩍 맨발을 들어 구두에 끼우고, 후~하고 연기를 내뿜는다.
<해피엔드>에서 뽑아져 나온 발칙하고 옹골진 이미지에 좀 더 앙칼지게 날을 세우면 <피도 눈물도 없이>(2002)의 ‘수진’이 된다. 수진은 좋은 이미지의 배역도 아니었고, 연기가 수월한 편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수진이 됨으로써, <나도 아내...>의 평이한 역할이 주는 안온함을 떨쳐버린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려 애쓴다. 답습은 죽음이라는 듯이. 휴화산 같은 열정을 간직한 배우 전도연의 이미지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의 숙부인에 그대로 투영된다. 가슴속 뜨거운 것을 좇아 올인할 것 같은 그녀의 이미지는 영화 속 ‘정사(情死)’와 그대로 맞물린다. 견고해 보이는 자아 속에 사랑을 미치게 갈구하는 엄청난 정열이 숨어 있었음은 이미 <약속>에서 표출한 바 있다.
<인어공주>(2004)는 그녀의 지금껏 연기의 결정판이다. <내 마음의 풍금>의 ‘촌스럽고 촐랑거리는 가시내’ 이미지(①)에, <해피엔드> <피도 눈물도 없이>의 ‘당돌하고 또릿또릿한’ 이미지(②), 그리고 ‘사랑을 확신하는’ <약속>과 <스캔들>의 이미지(③)가 ‘연순’에게 녹아 있다. 그리고 <접속>에서 보여 주었던 ‘평범하지만 예민한’ 이미지(④)가, <나도 아내...>의 미세한 먼지를 털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인어공주>의 ‘나영’에게 스며 있다. 그녀의 연기는 적어도 네 가지 갈래를 지닌 채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많은 배우들이 한 가지 이미지를 구축하고 조금씩 변주하며 안착하고자 하는 데 비해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와 같다. 우아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그녀는, 나이조차 가늠되지 않는 비특이적(非特異的)인 인상에, 동네 여자마냥 쉽고 단순해 보인다. 평범하다 못해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힘이다. 미인족(美人族)이 아닌 그녀는 우리에게 먼저 동질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분분한 소문들 속에서도 우리가 그녀를 질시와 경계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은 바로 유적(類的) 동질감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와 다르다. 그녀는 가볍고 빠르게 자신을 변모시키며, 원하는 것을 쉽게 놓지 않을 '깡다구'를 지녔다.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힘이다. 결코 호락호락하거나 말랑말랑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 매 순간 모험을 하듯 자신을 내던지는 그녀, 통하면 100% 믿고, 여차하면 목숨도 걸 것 같은 그녀는 단연 비범하다.
이를테면 그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일깨우는 ‘희망의 징표’이다. 평범함을 빌미 삼아 변화를 꿈꾸지 못하는 ‘안이한’ 우리들, 아까울 것 하나 없어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무거운’ 우리들, 언제나 말똥말똥 본전 생각하는 ‘비겁한’ 우리들에게 그녀는 톡 튀어나온 이마를 조악거리며 되바라지듯 말할 것 같다. “암만유, 사람이 일단은 몸이 날래고 봐야지유.” ‘경쾌한 변신과 명쾌한 확신’으로 표상되는 그녀, 굼뜬 우리들에게 ‘자신을 던지고 비범해질 것’을 끊임없이 종용하고 자극하지만, 암만해도 우린 그녀처럼 될 순 없을 것 같다. 하기야, 프라다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