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 정념(pathos)의 웅덩이 - 우리에게 STAR는 무엇인가 (3) 장동건 |
남자 배우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지만 장동건은 ‘아름답다’는 수사에 어울리는 얼굴을 가졌다. 무엇보다 그의 수려한 마스크는 경이로운 스펙터클에 대한 시네마틱한 관심을 환기한다. ‘이미지를 대한 매혹’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마스크는 영화적이다. 저마다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장동건의 얼굴 부위 가운데서도 눈은 단연 발군이다. 특히나 장동건의 눈은 그 크기에서 여타의 배우들을 압도할 만하다. 검은 자위와 흰자위의 조합이 황금 비율로 섞인 눈동자와 인공미마저 느껴지는 두텁고 짙은 눈썹, 곧게 뻗은 콧선으로 연결되는 좁은 미간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에게 주문하더라도 빚어내기 쉽지 않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 청명해 보이는 눈이 말랑말랑한 멜로영화보다는 와일드한 남성 드라마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부라린 눈의 강렬함만이 뇌리에 남았던 <해안선>, 희번덕거리는 흰자위를 드러내며 퍽 쇼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스크린에서 돋보였던 건 언제나 그의 눈이었다. 스크린에 비친 장동건의 눈은 가끔 찌르르한 감정의 맥동을 느끼게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눈’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
장동건을 보고 있으면 ‘눈이 인간 내면을 드러내는 창문’이라는 말이 진실로 느껴진다. 스크린 속에서 그의 눈은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지를 말없이 머금고 있는 셈이다. '눈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을 논한다면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의 걸출한 배우들이 떠오르지만 그 눈빛만으로 풍부한 정념을 대변하는 장동건도 이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눈에는 수줍음, 열등감, 야비함, 순수, 정열, 광기 등의 다층적인 정서가 담겨 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통상 구사하는 대단한 ‘변신’이나 노련한 ‘기교’,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 표현의 영역을 넓혀온 배우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장동건이 행한 변신이나 기교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외모에 가려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없었던 걸 만들어내기보다는 주어진 요소들을 활용하는 쪽에 가까운 그에게 눈은 가장 든든한 표현의 밑천이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그가 ‘눈의 표현’ 외에 특별한 신체적 이점을 타고 나지 못한 배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장동건의 신체는 스크린 전체를 사로잡기에는 덜 조화스럽다. 눈을 포함한 시네마틱한 마스크에 비해 그의 몸은 투박한 편이다. 조금 과장하건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장동건은 팔, 다리가 없이 큼지막한 눈만 둥둥 떠다니는 형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건 그 커다란 눈이 보여지는 양상이다. 담배를 꼬나 물고(그는 하루에 3갑의 담배를 피우는 헤비 스모커다) 미간을 찌푸리거나 턱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검은 눈동자를 위로 몰아 치켜뜬 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장기다. 주목해야 할 건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똑바로 응시하는 눈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친구>의 동수, <해안선>의 강상병이 그러했듯이 그의 눈은 상대를 애써 낮춰보거나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자책으로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것은 장동건이 반듯한 외양과는 달리 세상과 불화하거나 괴리된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의가형제>부터, <친구> <해안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그는 고독하게 홀로 남겨지게 되는 인물들을 도맡아왔다. 기묘하게도 이런 계열의 인물들은 그에게 어떤 결핍의 이미지를 형성시킨다. 그 이미지의 실체는 천상의 마스크가 결핍하고 있는 무언가, 숨막힐 듯한 완전무결함에서 스스로 후퇴하고자 하는 절절한 욕망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배우로서의 장동건 역시 늘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장동건이 연기한 캐릭터는 그의 스타 이미지와 기이하게 공명한다. ‘잘생기기만한 배우’라는 세인의 평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적잖은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배우로서는 더없이 애석하게 여길 만한 그런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장동건은 무던히도 노력했다. 만인이 선망하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을 때, 활동을 중단한 채 연기학교에 입학해 배우로서 자양분을 벌충하려 했고 당대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명세와 김기덕, 그리고 강제규)과의 작업을 통해 배우로서 개안(開眼)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를 위해선 안 됐지만 그의 스타 이미지는 쉽게 극복될 수 없을 만큼 강고할 뿐 아니라 대중들을 위해서는 극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장동건은 영화사의 초기부터 대중들이 은막의 스타에게 품어온 유서 깊은 동경, 매혹의 이미지를 향한 맹목적인 숭배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다. 이것은 여느 한국 배우들과는 다른 궁극의 미의식과 연관된다. 다행스러운 건 그의 잘생긴 외모가 영화의 자율성을 해칠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장동건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칭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절대적인 미를 지니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전시의 욕망을 부추긴다. 말하자면 그는 ‘TV 화면도 연극 무대도 아닌 오로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배우’다. 그의 출연작 중 <해안선>이 가장 괴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와는 무관하게 <해안선>은 관객의 기대 심리, 스크린을 통한 시각적 쾌락의 욕망을 무자비하게 배반한다. 과장되게 부릅뜬 눈 말고 강 상병의 심리를 설명할 만한 단서를 주지 못한 그 영화는 그 역을 왜 장동건이 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역시 주지 않는다. 장동건이 연기하는 역할은 대개 영웅적인 인물이 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으나 스타 시스템에 기생하는 영화 산업이, 그리고 스타에게 매료된 관객이 부여한 과업이다. 관객들의 호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제어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동건은 쉽게 망가질 수도 없는 배우이다. 그만큼 코미디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있을까. 관객들은 그가 육두문자를 내뱉고 경박한 개그로 사람을 웃기려 애쓰는 광경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하기 싫다. 처음에는 그 역시 배우로서 짊어진 이런 생래적인 한계성 때문에 고심했으나 얼마 전부터 이로부터 초탈해진 듯하다. 그러니까 장동건은 감정의 파토스(pathos)가 지배하는 장르의 주인공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 운명은 전적으로 강력한 울림을 주는 그의 눈 때문이다. 치켜뜨고만 있어도 그 눈은 어떤 격정을 실어 나른다. 그 깊은 웅덩이 속에서 건져 올려지는 것은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정념들이다. 그런 이유로 최민식과 다른 의미에서 장동건은 클로즈업이 어울리는 배우이다. 그의 확대된 눈은 우리에게 화를 내거나 때로는 호소하며, 때로는 안타까움을 전한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론’을 통해 ‘동일시를 조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인간의 아름다운 얼굴에 시선이 집중될 때, 즉 그순간 그 동일시가 절정에 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스타는 스타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금언에 따르자면 장동건은 가장 영화적인(cinematic) ‘스타’일 것이다. '배우’라는 격이 있는(?) 칭호를 얻기 전, 그는 ‘스타’였으며 지금도 한국에서 ‘무비 스타’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이다. 장동건의 육신은 보기 좋은 구경거리에 대한 열망이라는 영화 본래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는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이 전하는 친근함보다는 순백의 스크린을 통해 숭배를 보내고 싶은 황홀경의 대상에 가깝다. 아직까지 장동건은 맡은 역할보다 그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자체로 대중의 환심을 사는 배우다. 그는 갖은 정념을 머금은 눈동자, 그 미려한 마스크의 스펙터클로 관객을 무아지경에 몰아넣는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해안선>은 이 스펙터클의 장력을 상쇄하려 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필요하지도 충분치도 않았다. 이건 한국 영화계의 어떤 배우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장동건만의 페르소나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온몸으로 연기한다는 건 어쩌면 연극에서나 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스크린은 전신(全身) 혹은 전체의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부분 혹은 분절의 매체이다. 얼굴 혹은 관심을 끄는 특정한 디테일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와 영화를 우리는 수없이 알고 있다. 그것이 또한 프레임이라는 사각틀을 통해 현실을 짜깁기하는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선사한 축복이 아닐까. 장동건이 수더분한 보통 사람, 혹은 촌구석의 무지랭이를 연기한다면 관객들은 굳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극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확신한다. 최민식과 송강호, 설경구의 연기에 탄복하는 대다수의 한국영화 제작자들조차 장동건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필시 불완전하지만 멋진 주인공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