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 하드 바디 소년의 우울 - 우리에게 STAR는 무엇인가 (1) 권상우의 몸 |
영화가 존재한 이래 스타는 항상 영화와 함께 관객과 호흡했다. 스크린 위에 다양한 얼굴로 등장했던 그들은 배우 그 이상의 의미를 응축하고 대중에게 다가왔다. 스타는 시대를 반영하는 페르소나였으며, 시대를 거스르는 선동가였고, 관객의 무의식을 하나의 완결된 형상으로 집약하는 아이콘이었다. 대중은 스타에게서 이상을 발견하고, 삶을 안위하고, 동질의 쾌락과 이질의 판타지를 동시에 꿈꿨다. 스타의 위상과 기능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표정을 달리해 왔고, 지금 우리의 시대엔 우리들만의 스타가 있다. 장동건, 송강호, 권상우, 설경구, 전도연, 최민식, 전지현 일곱 명의 스타가 그들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차례대로 추적한다. 스타, 그들은 대중에게 무엇인가.
권상우의 몸은 섹시하다. 잘 다져진 역삼각형 몸매에 왕(王) 자가 뚜렷한 복부, 매끄러운 질감의 근육은 촉각의 욕망을 자극한다. 거미줄처럼 현란하고 원시적인 획을 긋는 복부의 굴곡은 남녀를 불문하고 말초적인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 '몸짱'이라는 신조어와 늘 함께했던 그의 육체는 여러 의미에서 최근 '메트로섹슈얼' '웰빙' 붐과 함께 분출한 신생 담론들의 생생한 격전장이 됐다. '얼짱'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몸짱'은 노력의 산물이다. 거기에는 한순간의 성형과 달리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과 부단히 경주해온 사적인 시간이 담겨 있다. 몸짱 스타는 옷을 벗어 젖히는 것만으로도 스타로서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권상우의 스타성은 분명 각고의 노력을 거쳐 얻어진 바다.
외관만을 두고 권상우를 이른바 남성적, 마초적 근육질 스타라고 호칭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대부분 남성 근육질 스타의 육체가 오직 생존하기 위해 다듬어진 질기고 터프한 근육이라면, 권상우의 그것은 시종일관 보여지기 위해 단련된 매끈하고 부드러운 근육이다. '근육'이라는 단어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구릿빛'이라는 수사가 그의 육체에는 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힘의 과시 혹은 남성성의 상징으로서의 육체라기보다 철저히 패션과 미용으로 다져진 육체다. 남성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안의 여성성을 억누르지 않는 남성, 단단한 육체를 만듦과 동시에 곱상한 외모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남성, 앞서 말했듯 그는 성 역할의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메트로섹슈얼 스타다. 그런 점에서 그가 <신부수업>에서 신부 역할로 등장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체의 노출 없이 봉인된 제복의 성직자는 그 자체로 중성적이며, 이성애적 결혼 제도로부터 초월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트로섹슈얼 운운하더라도 특징적인 것은 권상우의 피부가 유독 맑고 창백하다는 점이다. 또래의 남자 스타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그렇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도 <화산고>(2001), <일단 뛰어>(2002),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말죽거리 잔혹사>(2004) 등 지금껏 출연한 영화 모두에서 고등학생으로 등장했다. 모두 사회로의 진입을 거부하는 혹은 스스로 차단한 듯한 캐릭터다. 그처럼 동안의 마스크와 울룩불룩한 몸매가 묘한 이화 작용을 이루는 남자 배우도 드물다. 그 때문일까. 그는 여타의 근육질 배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매우 강한 공감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 공감의 차이가 중요하다.
여성학자 수잔 제퍼드는 자신의 저서 <하드 바디>를 통해 '레이건 시대 할리우드영화에 나타난 남성성'의 상징으로서 람보, 터미네이터, 로보캅, 존 매클레인(<다이 하드>) 등의 캐릭터를 '하드 바디'라 칭한다. 덧붙여 마약 사범과 동성애자 등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위협하는 나약한 남성 캐릭터들을 '소프트 바디'라고 부른다. 권상우는 분명 하드 바디로서의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하드 바디와 소프트 바디 사이의 애매한 경계 위에서 부유한다.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서 그와 비슷한 역할을 고르라면 단연 <스파이더맨 2>의 토비 맥과이어일 것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뚜렷한 의식과 도덕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친 곤경과 싸우는 맹렬한 히어로와는 거리가 멀다. 권상우 역시 자신의 하드 바디로 현실과 싸우지만 치열하게 맞붙기보다는 슬쩍 비켜선다. 무림 학원을 평정한 <화산고>의 송학림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쌈짱' 지훈, 그리고 이소룡을 추종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 모두 최고의 싸움꾼이지만 남성적 에너지로 똘똘 뭉친 하드 바디 영웅이라고 보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그는 무척 심약한 캐릭터다.
권상우는 출연했던 영화 모두에서 이른바 상실 혹은 결손의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는 육체를 직접 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전문직 종사자, 특히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흘러가는 정보들을 살피느라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이상형으로 섬기는 몸매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처한 현실은 그들과 별반 바르지 않다. 영화 속의 그는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형상을 하고 외부로부터 불쑥 찾아온다. 늘 고등학생으로 등장했다는 것과 더불어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성장 영화다. 그는 언제나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는 버려진 아이였다. <일단 뛰어>에서 그가 연기한 우섭은 집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버지의 베개에 냉큼 문을 닫아 거는 껄렁한 아이였다. 역시 주먹 하나는 최고여서 언제나 건들대지만 그럴수록 그의 결핍이 더욱 짙게 묻어 나왔다. 여기서 우섭이 지닌 신선하고 탄탄한 육체는 호스트 전문으로 온갖 '이모'와 '고모'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번듯한 상품에 불과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그리 다를 건 없었다. 벼락 부잣집 아들에다 고등학교 1년을 꿇은 지훈은 유독 '물주'인 아버지만을 무서워 한다. 비록 영화화가 중단되긴 했지만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데우스 마키나>에서 그가 연기하기로 했던 캐릭터 또한 변두리 옥탑방에 살며 오토바이 수리와 술집 청소일을 하는 거리의 소년이었다.
이러한 권상우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영화는 아마도 <말죽거리 잔혹사>일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고등학생이며 부모의 규율 바깥에 존재하는 아이다. 현수의 머릿속은 온통 이소룡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는 태권도장의 우직한 관장이자 그에게 시종일관 남자다움을 주입하는 가부장이다. 이쯤에서 남자로서 현수가 걷게 될 미래상은 고정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체질적으로 감겨오고 드러나는 자신의 남성성이 못내 부담스럽다. 그것은 늘 '조난당한 고등학생' 이미지인 그의 모습과 겹쳐져 마치 성별화된 세계에 대한 퇴행적인 거부처럼 보인다. 제멋대로인 우식(이정진)이 전형적인 마초 캐릭터라면 농구를 통해 일시적으로 맺어진 둘 사이의 남성성의 규약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여기서 현수의 이미지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면적이다. 그는 전복적 태도와 낭만적 기질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러한 다면성은 <말죽거리 잔혹사>가 보여 주는 동일시의 효과로 이어진다. 동일시의 중요한 두 가지 측면이 과잉 인간에 대한 찬양과 과소 인간에 대한 동정이라면, 권상우는 두 가지 측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하드 바디를 지닌 배우로서 현실에서 언제나 자신이 과소 인간임을 자책하고 있는 왜소한 대중들에게 상상적 해결사 노릇을 해주기도 하지만(선도부장에 대한 극적인 복수),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라는 절규에서 드러나듯 치유해 주고픈 인간적 상처와 결함 또한 지니고 있다. 특히 그가 가장 격정적인 액션을 보여 주는 후반부 옥상 신이 그 극명한 예다. 자신의 몸을 과감히 드러낸 채 수련을 거듭하던 그가 최후 대결에 이르러 단련된 육체를 검은 교복으로 단단히 감싼다. 그가 웃통을 벗어 탄탄한 육체를 드러내지 않는 한 급우들은, 현수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선도부장(이종혁)에 대한 도전("옥상으로 올라와 이 새끼야!")을 단지 어처구니없는 객기로만 생각할 것이다. 교복으로 둘러싸인 그의 몸짓 또한 자칫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익숙하게 보아온, 그리고 현수가 그렇게 좋아하는 이소룡처럼 웃통을 벗어 근육을 뽐내며 싸우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얻어맞고 다시 때리고 쓰러지듯 튀어 올라 쌍절곤을 휘두르는 그의 동선은 정처 없는 폐곡선을 그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가 차지하고 있는 내러티브를 잡아먹으며 자신이 재현할 캐릭터를 제압하고, 거꾸로 주변 그 모두를 장악하고야 마는 스타들이 있다면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는 그 반대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라는 위치가 사뭇 부담스럽다. 현수는 폭압적인 학교 환경 혹은 지긋지긋한 남자 고등학교의 예비 마초들 사이에서 안간힘 다해 오직 자신만을 불투명하게 재현한다. 그토록 잘 발달된 근육들로 이루어진 심미적인 육체는 정작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는 슈퍼맨의 하드 바디를 가졌지만 포레스트 검프처럼 행동하는 영원한 소년이다.
리처드 다이어는 자신의 저서 <스타_이미지와 기호>에서 남성 육체의 모든 재현, 특히 남성 누드의 재현은 남근적 물신과 결여된 페니스, 그 둘 사이의 기본적인 불일치를 보여 주는 행위라고 말한다. 남성 주체가 여성에 비해 우월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실제로는 시각적으로 초라할 수밖에 없는 페니스와 괴리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만큼 남성들의 단단한 육체의 과시는 또한 공격받기 쉬운, 깨지기 쉬운 연약함을 동반한다. 권상우라는 하드 바디가 보여 주는 당대의 아이러니는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 그 아이러니에는 과잉 인간과 과소 인간이 함께 손잡고 있고, 남자 관객들의 동일시 욕망과 여자 관객들의 관음증 또한 사이좋게 동거하고 있다. 권상우의 몸은 무수한 환상과 동정이 교차하는 당대 한국 영화계의 아주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제부터 관람이 시작돼야 할, 그 어떤 전통에도 발 담그지 않은 신선한 육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