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Crown] KBS 월화동화 - 낭랑 18세 |
일전에도 몇차례 이야기한적이 있었지만, KBS2 월화 드라마는 참 신기한 존재이다. 다른 방송사들이 이 시간대에 전력을 다하는 것과 달리 KBS2는 이 시간대의 드라마에 어떤 구체적인 전략도, 적극적인 투자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내부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밖에서 보기엔 그저 몇가지 조건만 충족시켜서 방영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캐스팅은 늘 그럭저럭, 스토리는 멜로 코믹 액션의 콤보. 그러다보니 드라마는 굉장히 유치하면서도 진지한‘척’하고, 여러 요소들은 다 갖추고 있었지만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경우가 없었다. 지향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된 킬링타임용 오락물이지만, 정말 그렇게 시간이라도 죽일 수 있는 재밌는 오락물은 제대로 나온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시간대를 주말대로 옮겼던 ‘보디가드’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차승원의 캐릭터에 드라마의 모든 것을 집중시켜 경쾌한 코미디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을뿐, 그 외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그러니 KBS2 월화 드라마가 윤석호 PD나 노희경-표민수콤비의 작품처럼 유명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 아닌바에야 늘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액션 멜로 코믹이란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이긴 하지만, 그걸 한데 섞어놓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분위기로 통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얼마전 방영됐던 ‘그녀는 짱’만해도 그렇지 않았는가. 조폭두목의 딸이 대학 강사로 나서 일으키는 헤프닝이나 수도사와 조직의 넘버3와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내용은 코미디에 가까웠지만, 조직내부의 배신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작품은 갑자기 한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작품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모두 사라지고, 조직을 배신한 부하의 조직들이 주인공의 다리를 그대로 부러뜨리는 식의 잔인한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이 작품의 톤을 어디에 맞춰놓고 봐야할지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상황마다 급변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없이 가볍게 나가다가 갑자기 세상의 모든 절망을 짊어진것처럼 행동하니 그걸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감 잡았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록 ‘그녀는 짱’이 실패하긴 했어도 그 전후의 KBS2 월화 드라마들은 더 이상 전과같은 ‘삽질’을 반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와 ‘낭랑 18세’는 그점에서 그다지 높지않은 시청률과 별개로 평가받을만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그리 높은 시청률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출연 배우들의 인기를 한단계 상승시켰고, 상당한 매니아 시청자를 거느리게 됐으며, ‘낭랑 18세’는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이 두 드라마가 이 시간대의 KBS2 드라마가 요구하는 것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이전의 실패작들과는 다른 확실한 재미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KBS2의 드라마가 어떻게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제시했고, ‘낭랑 18세’는 그것을 보다 상업적으로 잘 다듬어낸 드라마에 가깝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기본적으로 KBS2의 월화드라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제비족이 첫사랑을 찾기 위해 고등학교에 간다는 설정이나, 학교안에서 ‘짱’의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거나 차 추격전등이 벌어지는 것은 기존의 KBS2 드라마와 비슷했으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그것을 등장인물의 순수함으로 봉합하면서 예상치못한 에너지를 흐르게 했다. 그들은 결코 웃기려고 웃기는 것이 아니고, 울리고 싶어서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맞딱뜨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그것뿐이었기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고, 그런 행동이 하나둘씩 쌓여 그들의 순수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유치해보여도 진심이 담겨있었고, 그 순수한 힘은 결국 이 드라마의 팬들로 하여금 눈물을 뽑아내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설정이 아니라 캐릭터의 존재감과 진실성이었던 것이었고, ’상두야 학교가자‘는 그것을 아이같은 순수함에서 찾음으로서 드라마에 시종일관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8세 소녀가 본 세계
‘낭랑 18세’는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여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얼핏 보기에 말이 안될정도로 유치한 작품처럼 보인다. 검사인 혁준(이동건)이 조폭과의 싸움에서 위기에 몰리자 그 주변을 지나가던 씨름선수들이 등장해 조폭을 물리치고, 그들이 씨름 기술을 쓸때는 아예 기술이름이 자막으로까지 표현되는 식이다. 게다가 캐릭터들은 정숙(한지혜)뿐만 아니라 30이 다된 혁준마저도 사랑에 대해서는 완전히 쑥맥이어서 정숙에게 마음을 고백할때마다 실수 연발일 정도이니 이만하면 드라마의 현실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치한 드라마로 비춰질만도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모든 사랑과 액션과 코미디를 주인공인 낭랑 18세 정숙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고, 그녀가 부딪치게 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 작품속에서 정숙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쁜 사람은 거의 없고, 모든 삶의 고민들과 현실적인 갈등은 결국 착한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되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아직 실컷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남편을 ‘아저씨’라 부르는 소녀가 모든 것을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리 없지 않겠는가. 액션이 펼쳐질때면 당연히 그것을 있는대로 과장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 나름대로 견뎌낼 수 있는 모험들이 있다. 얼굴 잘생기고 싸움까지 잘하는 검사 아저씨와 결혼하고, 남편을 좋아하는 여자와 삼각관계도 형성하며, 위기에 빠진 남편을 구하는 활약도 해본다. 18세 소녀, 혹은 그 이하의 소녀가 한번쯤은 가졌을법한 유치하지만 경쾌한 상상을 ‘낭랑 18세’는 드라마로 옮긴 것이고, 이 드라마의 과장된 유치함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서 무슨 싸움이 벌어지건 그건 이 소녀의 관점에서 볼때는 흥미진진한 활극같은 것이다. 가영(이다해)과 정숙의 동서 선아(유혜정)이 서로 고소를 한다 어쩐다하는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어른의 관점이라면 이 싸움은 나이든 여자 두명이 주책떠는 것이지만, 정숙이 보기에는 굉장히 심각하고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는 그런 싸움이다. 가영이 내뱉는 법관련 단어들이 어려워서 자막이라도 나와줘야할 것 같은 그런 상황인 것이고, 드라마는 실제로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싸운 선아와 싸운 가영은 어느샌가 자신의 첫사랑을 두고 경쟁했던 정숙과 친해져있다. 모든 갈등도 즐겁게 해결되는 곳, 그것이 바로 ‘낭랑 18세’의 세계이다.
물론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한없이 유치하기만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가 그러했듯, ‘낭랑 18세’는 그안에 주인공들의 진심, 특히 10대 소녀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진실되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마치 동화를 현실로 바꿔놓은듯하다. 거기엔 자신을 데려갈 왕자님(=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검사)도 있고, 그 왕자님의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궁전(=뼈대있는 만석지기 양반가문)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공주님의 출세기라는 의존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숙의 ‘사회화’과정을 위한 교육장이 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검사 신분이나 돈많은 양반가문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천방지축으로 살아갔던 소녀가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그러면서 ‘어른’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에 있다. 10대는 반항적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거나 어른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성장시켜줄 어른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고, ‘낭랑 18세’에서 할아버지(이순재)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은 정숙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질책과 꾸지람보다는 일단 자신을 이해하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가르쳐주는 어른의 존재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의 존재이고, 그 어른들의 세상을 통해 정숙은 자기 스스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혁준과의 첫날밤을 고민하는 정숙에게 차분하고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는 정숙의 담임 선생님처럼, 10대는 그렇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자신에게 무언가 답을 내려주고, 답을 내려주면서도 강요하지는 않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낭랑 18세’는 그런 10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나름대로 현실화시킨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낭랑 18세’에서 정말 중요한 스토리라인은 정숙-혁준-가영의 삼각관계도, 혁준과 조폭간의 다툼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 이루어지는 정숙의 성장이다. 그녀는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혁준에게 소리나 지르는 고교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혁준과의 대화방법을 알게 되고, 혁준과 진짜 사랑을 시작하며, 첫날밤을 치룬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던 어른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기가 그 세상을 이끌어야할 위치에까지 오른다. 정숙과 혁준이 첫날밤을 보내며 하는 말처럼, 정숙은 이 드라마속에서 정말 ‘어른이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어떤 극적인 사건대신 정숙의 꿈과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소소하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결론이다.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어른이 되어가는 수많은 과정을 겪은 소녀가 맞이해야하는 것은 결국 어른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어른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어른처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또다른 ‘소녀’들이 제대로된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검사 아저씨와 결혼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소녀가 어른의 가르침을 받고, 결혼생활을 직접 부딪치게 되면서 오히려 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죽음은 단지 노인의 죽음이라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이라서 슬픈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존재의 상실이기 때문에 정말 슬픈 것이다. 이제 정숙은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누구의 말을 들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정숙은 이제 스스로 더 큰 어른이 되어가야하고, 자신의 남편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비록 표현방법은 의도적으로 유치할지라도, ‘낭랑 18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다가온 어른들의 일들을 해결해나가야하는 10대의 고민이 들어있었다. 아직 유치한 상상도 마음껏 펼칠 나이지만 곧 20대의 현실적인 고민도 해야할 나이의 청소년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 세상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낭랑 18세’를 이끄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낭랑 18세’가 10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시청자를 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이 드라마가 그저 10대의 발랄함, 반항적이고 튀기만하는 10대가 공주님이 되는 스토리였다면, ‘어른’들은 이 드라마의 유치함을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낭랑 18세’는 10대의 환타지속에 그 10대가 어른이 되면서 겪게되는 통과제의를 자연스럽게 집어넣고, 그에 대한 고민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풀어내면서 어른들도 어느 부분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치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유치한 일들은 어른들도 그 나이때 겪었던 경험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절실한 고민인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싸우는 정숙과 혁준의 모습은 유치하면서도 어딘가 흐뭇하고 보기 좋은 부분이 있다. 나도 저때 저랬었지하는, 애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느낌말이다.
상두, 낭랑, 그리고 백설공주
이것은 KBS2의 월화 드라마가 살아나갈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기존의 요소는 모두 집어넣되 그것을 최대한 10대 취향에 맞추어 만들 것,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되게’만들 수 있는 일관된 흐름을 만들 것. 그렇게 되면 이런 작품들을 유치하다고, 혹은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거기서 나오는 순수함이나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상두야 학교가자’와 ‘낭랑 18세’가 일정수준의 시청률을 올리고, 매니아 시청자를 만들어내며, 결국 주인공들의 인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이런 두 드라마의 스타일이 먹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순수하고, 때론 유치해보여서 그것 때문에 싫어할수도 있지만, 어떤 시청자들은 굉장히 즐거워하고, 그 속의 순수함에 감동할수도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이것은 시청률 1위는 힘들지만 늘 고정 시청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방법이고, 더불어 스타 캐스팅에서 열세를 보이는 KBS가 스타를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미 비가 떴고, 그 다음에는 이동건과 한지혜가 자기 자리를 굳히지 않았는가.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창작물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누구에게나 자유방임을 시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거기엔 전체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제시되어야한다. 마치 청소년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어른처럼. ‘낭랑 18세’는 그 필요성을 보여주었고, KBS2 월화드라마가 지금보다는 나아질수도 있는 방법을 보여준 드라마이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그러니 KBS2 월화 드라마가 윤석호 PD나 노희경-표민수콤비의 작품처럼 유명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 아닌바에야 늘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액션 멜로 코믹이란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이긴 하지만, 그걸 한데 섞어놓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분위기로 통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얼마전 방영됐던 ‘그녀는 짱’만해도 그렇지 않았는가. 조폭두목의 딸이 대학 강사로 나서 일으키는 헤프닝이나 수도사와 조직의 넘버3와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내용은 코미디에 가까웠지만, 조직내부의 배신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작품은 갑자기 한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작품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모두 사라지고, 조직을 배신한 부하의 조직들이 주인공의 다리를 그대로 부러뜨리는 식의 잔인한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이 작품의 톤을 어디에 맞춰놓고 봐야할지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상황마다 급변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없이 가볍게 나가다가 갑자기 세상의 모든 절망을 짊어진것처럼 행동하니 그걸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감 잡았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록 ‘그녀는 짱’이 실패하긴 했어도 그 전후의 KBS2 월화 드라마들은 더 이상 전과같은 ‘삽질’을 반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와 ‘낭랑 18세’는 그점에서 그다지 높지않은 시청률과 별개로 평가받을만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그리 높은 시청률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출연 배우들의 인기를 한단계 상승시켰고, 상당한 매니아 시청자를 거느리게 됐으며, ‘낭랑 18세’는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이 두 드라마가 이 시간대의 KBS2 드라마가 요구하는 것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이전의 실패작들과는 다른 확실한 재미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KBS2의 드라마가 어떻게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제시했고, ‘낭랑 18세’는 그것을 보다 상업적으로 잘 다듬어낸 드라마에 가깝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기본적으로 KBS2의 월화드라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제비족이 첫사랑을 찾기 위해 고등학교에 간다는 설정이나, 학교안에서 ‘짱’의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거나 차 추격전등이 벌어지는 것은 기존의 KBS2 드라마와 비슷했으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그것을 등장인물의 순수함으로 봉합하면서 예상치못한 에너지를 흐르게 했다. 그들은 결코 웃기려고 웃기는 것이 아니고, 울리고 싶어서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맞딱뜨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그것뿐이었기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고, 그런 행동이 하나둘씩 쌓여 그들의 순수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유치해보여도 진심이 담겨있었고, 그 순수한 힘은 결국 이 드라마의 팬들로 하여금 눈물을 뽑아내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설정이 아니라 캐릭터의 존재감과 진실성이었던 것이었고, ’상두야 학교가자‘는 그것을 아이같은 순수함에서 찾음으로서 드라마에 시종일관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8세 소녀가 본 세계
‘낭랑 18세’는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여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얼핏 보기에 말이 안될정도로 유치한 작품처럼 보인다. 검사인 혁준(이동건)이 조폭과의 싸움에서 위기에 몰리자 그 주변을 지나가던 씨름선수들이 등장해 조폭을 물리치고, 그들이 씨름 기술을 쓸때는 아예 기술이름이 자막으로까지 표현되는 식이다. 게다가 캐릭터들은 정숙(한지혜)뿐만 아니라 30이 다된 혁준마저도 사랑에 대해서는 완전히 쑥맥이어서 정숙에게 마음을 고백할때마다 실수 연발일 정도이니 이만하면 드라마의 현실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치한 드라마로 비춰질만도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모든 사랑과 액션과 코미디를 주인공인 낭랑 18세 정숙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고, 그녀가 부딪치게 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 작품속에서 정숙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쁜 사람은 거의 없고, 모든 삶의 고민들과 현실적인 갈등은 결국 착한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되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아직 실컷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남편을 ‘아저씨’라 부르는 소녀가 모든 것을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리 없지 않겠는가. 액션이 펼쳐질때면 당연히 그것을 있는대로 과장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 나름대로 견뎌낼 수 있는 모험들이 있다. 얼굴 잘생기고 싸움까지 잘하는 검사 아저씨와 결혼하고, 남편을 좋아하는 여자와 삼각관계도 형성하며, 위기에 빠진 남편을 구하는 활약도 해본다. 18세 소녀, 혹은 그 이하의 소녀가 한번쯤은 가졌을법한 유치하지만 경쾌한 상상을 ‘낭랑 18세’는 드라마로 옮긴 것이고, 이 드라마의 과장된 유치함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서 무슨 싸움이 벌어지건 그건 이 소녀의 관점에서 볼때는 흥미진진한 활극같은 것이다. 가영(이다해)과 정숙의 동서 선아(유혜정)이 서로 고소를 한다 어쩐다하는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어른의 관점이라면 이 싸움은 나이든 여자 두명이 주책떠는 것이지만, 정숙이 보기에는 굉장히 심각하고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는 그런 싸움이다. 가영이 내뱉는 법관련 단어들이 어려워서 자막이라도 나와줘야할 것 같은 그런 상황인 것이고, 드라마는 실제로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싸운 선아와 싸운 가영은 어느샌가 자신의 첫사랑을 두고 경쟁했던 정숙과 친해져있다. 모든 갈등도 즐겁게 해결되는 곳, 그것이 바로 ‘낭랑 18세’의 세계이다.
물론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한없이 유치하기만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가 그러했듯, ‘낭랑 18세’는 그안에 주인공들의 진심, 특히 10대 소녀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진실되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마치 동화를 현실로 바꿔놓은듯하다. 거기엔 자신을 데려갈 왕자님(=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검사)도 있고, 그 왕자님의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궁전(=뼈대있는 만석지기 양반가문)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공주님의 출세기라는 의존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숙의 ‘사회화’과정을 위한 교육장이 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검사 신분이나 돈많은 양반가문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천방지축으로 살아갔던 소녀가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그러면서 ‘어른’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에 있다. 10대는 반항적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거나 어른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성장시켜줄 어른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고, ‘낭랑 18세’에서 할아버지(이순재)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은 정숙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질책과 꾸지람보다는 일단 자신을 이해하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가르쳐주는 어른의 존재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의 존재이고, 그 어른들의 세상을 통해 정숙은 자기 스스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혁준과의 첫날밤을 고민하는 정숙에게 차분하고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는 정숙의 담임 선생님처럼, 10대는 그렇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자신에게 무언가 답을 내려주고, 답을 내려주면서도 강요하지는 않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낭랑 18세’는 그런 10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나름대로 현실화시킨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낭랑 18세’에서 정말 중요한 스토리라인은 정숙-혁준-가영의 삼각관계도, 혁준과 조폭간의 다툼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 이루어지는 정숙의 성장이다. 그녀는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혁준에게 소리나 지르는 고교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혁준과의 대화방법을 알게 되고, 혁준과 진짜 사랑을 시작하며, 첫날밤을 치룬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던 어른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기가 그 세상을 이끌어야할 위치에까지 오른다. 정숙과 혁준이 첫날밤을 보내며 하는 말처럼, 정숙은 이 드라마속에서 정말 ‘어른이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어떤 극적인 사건대신 정숙의 꿈과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소소하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결론이다.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어른이 되어가는 수많은 과정을 겪은 소녀가 맞이해야하는 것은 결국 어른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어른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어른처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또다른 ‘소녀’들이 제대로된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검사 아저씨와 결혼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소녀가 어른의 가르침을 받고, 결혼생활을 직접 부딪치게 되면서 오히려 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죽음은 단지 노인의 죽음이라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이라서 슬픈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존재의 상실이기 때문에 정말 슬픈 것이다. 이제 정숙은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누구의 말을 들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정숙은 이제 스스로 더 큰 어른이 되어가야하고, 자신의 남편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비록 표현방법은 의도적으로 유치할지라도, ‘낭랑 18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다가온 어른들의 일들을 해결해나가야하는 10대의 고민이 들어있었다. 아직 유치한 상상도 마음껏 펼칠 나이지만 곧 20대의 현실적인 고민도 해야할 나이의 청소년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 세상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낭랑 18세’를 이끄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낭랑 18세’가 10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시청자를 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이 드라마가 그저 10대의 발랄함, 반항적이고 튀기만하는 10대가 공주님이 되는 스토리였다면, ‘어른’들은 이 드라마의 유치함을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낭랑 18세’는 10대의 환타지속에 그 10대가 어른이 되면서 겪게되는 통과제의를 자연스럽게 집어넣고, 그에 대한 고민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풀어내면서 어른들도 어느 부분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치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유치한 일들은 어른들도 그 나이때 겪었던 경험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절실한 고민인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싸우는 정숙과 혁준의 모습은 유치하면서도 어딘가 흐뭇하고 보기 좋은 부분이 있다. 나도 저때 저랬었지하는, 애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느낌말이다.
상두, 낭랑, 그리고 백설공주
이것은 KBS2의 월화 드라마가 살아나갈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기존의 요소는 모두 집어넣되 그것을 최대한 10대 취향에 맞추어 만들 것,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되게’만들 수 있는 일관된 흐름을 만들 것. 그렇게 되면 이런 작품들을 유치하다고, 혹은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거기서 나오는 순수함이나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상두야 학교가자’와 ‘낭랑 18세’가 일정수준의 시청률을 올리고, 매니아 시청자를 만들어내며, 결국 주인공들의 인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이런 두 드라마의 스타일이 먹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순수하고, 때론 유치해보여서 그것 때문에 싫어할수도 있지만, 어떤 시청자들은 굉장히 즐거워하고, 그 속의 순수함에 감동할수도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이것은 시청률 1위는 힘들지만 늘 고정 시청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방법이고, 더불어 스타 캐스팅에서 열세를 보이는 KBS가 스타를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미 비가 떴고, 그 다음에는 이동건과 한지혜가 자기 자리를 굳히지 않았는가.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창작물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누구에게나 자유방임을 시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거기엔 전체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제시되어야한다. 마치 청소년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어른처럼. ‘낭랑 18세’는 그 필요성을 보여주었고, KBS2 월화드라마가 지금보다는 나아질수도 있는 방법을 보여준 드라마이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