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한다는 것의 의미 - 네멋대로 해라 DIRECTOR'S CUT DVD
old/old_scrapbook 2003. 11. 1. 04:23
* 이 글은 트리플 크라운에 쓰기 위한 글이 아니라 인터넷 DVD 전문 사이트 DVD 프라임

(www.dvdprime.com)의 청탁을 받고 썼던 글입니다. 그래서 평소 트리플 크라운에 쓰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그리고 '네멋대로 해라'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그래서 자세한 분석이 곁들여진 글은 아니니 그걸 감안해주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네멋대로 해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얘기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네멋대로 해라'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로 남을만한 작품이다. 이는 작품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한국의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어떤 한계를 독특한 방법으로 깨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드라마란 그 작품성에 상관없이 일회성의, 혹은 단기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예를들면 '프렌즈'같은 미국 시즌제 드라마들이 매년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돌아와 시청자와 팬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특정 시기에는 그 드라마를 보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기까지 하는데 반해 짧은 시간안에 모든 스토리를 완결짓는 한국의 드라마는 그순간의 열광적인 반응은 이끌어낼 수 있었어도 지속적이고 굳건한 팬덤을 형성하기는 힘들었다.



드라마 DVD를 사본다는 것



물론 '거짓말'같은 독특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는 말그대로 방영당시부터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자를 가진 '컬트'였고, 요즘에는 많은 드라마들이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옛 히트작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가질뿐 어떤 강력한 팬층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방영당시 높은 인기를 모았던 '피아노'와 '명랑소녀 성공기'같은 작품들이 DVD시장에서는 실패한 것은 이런 한국 드라마의 속성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TV를 통해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시청자'는 있어도 그것을 소장하기 위해 비디오나 DVD같은 매체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팬'은 생기기 어려운 것이 한국 드라마의 현실이고, 그렇기에 한국 드라마 DVD의 부진은 그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 한국의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구조적인 특징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네멋대로 해라'는 그런 한국 드라마의 한계들을 믿을 수없이 강렬한 팬층으로 깨버렸다. '네멋대로 해라'는 불과 두달남짓한 시간동안 엄청나게 열광적이고 두터운 팬층을 형성했다. 스스로를 '네멋 매니아'나 '네멋 폐인'이라고 지칭한 이 드라마의 팬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동호회를 만들고, '네멋대로 해라'에 등장한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며, 심지어는 그 팬들끼리 대규모의 모임을 열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어지간한 시즌제 드라마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열광적인 팬층을 '네멋대로 해라'는 불과 두달이라는 시간동안에 만들어낸 것이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 엔딩 크레딧이 뜨기전에 나온 "그동안 함께 마음을 나누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라는 문구는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드라마가 거듭될수록 일반적인 시청자가 아닌 그들의 팬, 혹은 매니아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살 사람들의 대부분은 '네멋대로 해라'의 종영과 동시에 DVD 발매를 요구하고, 자기 나름대로 서플의 내용까지 상상하며 '네멋대로 해라'를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고자했던 이 드라마의 열광적인 팬들이다.



그래서 '네멋대로 해라' DVD는 기존의 드라마 DVD들, 혹은 더 나아가 일반적인 DVD 타이틀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가치'를 가진다. DVD의 외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이 타이틀은 평범한 수준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DVD의 특성상 5.1채널 대신 스테레오로 마스터링 되었고, 화질에 있어서도 TV에서 볼때보다는 분명히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궁극의 화질'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또 NG씬과 메이킹 씬, 그리고 드라마에 등장한 스턴트 씬등으로 이루어진 서플역시 드라마 DVD로는 괜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화 DVD와 비교하면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제작상의 여건때문인지 몰라도 팬들이 궁금해할만한 메이킹 필름에서의 제작진들의 자세한 모습이나 메이킹 필름이 아닌 드라마의 장면들을 일부 편집한 스턴트씬등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드라마의 장소를 여행하듯 찍으며 팬들의 정서를 담은 'LOCATION'이 인상적인 정도라고 해야할까.



볼수록 새로운



그러나, '네멋대로 해라' DVD는 그런 외적인 모든 부분들을 상쇄할 수 있는 매력을 작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타이틀이고, 그것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이 작품의 대사 하나, 장면하나까지 모두 기억하는 팬들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네멋대로 해라'의 진정한 매력은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의 스토리의 완결성이나 주인공의 강렬한 캐릭터가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작품안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그안에서 하나의 세계와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구조에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소매치기와 키보디스트의 힘겨운 사랑'정도로 갈것만 같았던 복수(양동근)와 전경(이나영)의 사랑이 결국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전반부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파격적인 후반부로 이어지고, 마치 고정된 성격을 가진 조연 캐릭터로만 비춰졌던 그 차분히 중첩되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모두 각자의 삶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 방식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네멋대로 해라'는 'Ruler of your own world'라는 영어 제목답게 모든 출연진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소매치기와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의 일상속에 그토록 풍부한 삶의 성찰이 담길수 있듯, 그리고 드라마속 전경의 대사처럼 모든 음악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듯 '네멋대로 해라'는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에게 각자의 '사는법'을 보여줄 수있도록 했고, 단선적인 스토리 구조를 벗어나 각각의 인물들에게 그 사람들 각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는듯한, 이미 정해진 각본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그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자유도를 선사했다. 그렇기에 팬들은 그들의 인생, 혹은 그들이 각자 부딪히는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그 독특한 느낌중 하나를 선택해 깊게 몰입할 수 있었고, 그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인생과 그 삶의 방식은 시청자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강하게 건드릴 수 있었다. 어떤이는 복수와 경의 사랑에 감동하고, 어떤이는 미래의 쿨한 사고방식에, 또 어떤이는 평생 자신의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며 그것을 마초적인 모습으로 애써 숨기려는 전강(이세창)의 모습에 깊이 공감되었다. 또 어떤 이는 이 작품이 묘사하는 그 일상의 모습과 예상치 못한 그 독특한 어법에 매료되었다. '네멋대로 해라'를 좋아하는 것은 같았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른 이유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네멋대로 해라'의 진짜 재미는 DVD를 통해 그것을 다시 보면서 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DVD를 보면 볼수록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 볼때는 느낄 수 없었던 풍부하고 새로운 요소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경과 복수와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던 사람이라면 이번에는 복수의 어머니나 전강의 아내(김혜선)가 보여주는 '여자로서의 삶'을 발견할수도 있을 것이고, 거의 '수수께끼'처럼 진행되는 후반부 에피소드에 나름의 해석을 가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낄수도 있을 것이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그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룬 작품답게, '네멋대로 해라'는 오히려 보면 볼수록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풍부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심지어 이 작품의 첫회는 돈 있는자와 돈없는자, 그리고 돈을 훔치는 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또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성들의 처지가 한국사회에서 가진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뒤틀고 있다는 점등은 이 드라마를 정치/사회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까지 한다. 특히 복수가 드라마속에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듯 복수가 '고복수'라는 이름대신 소매치기와 환자등으로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런 와중에 전경과 (성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남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단지 일상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작품속에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멋대로 해라'는 풍부한 사람들 각각의 인생과 그 인생을 만들어가는 일상속에 세상의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작품이다.



Director's cut, or fan's cut



  이는 이 작품이 다른 드라마 DVD 타이틀과 가장 큰 차별성을 갖는 추가 편집분에 의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려 217곳 164분에 달하는 추가된 씬들은(그래서 한회당 평균 상영시간이 한시간을 넘는다) 특별히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기보다는 50여분 안팎의 시간을 맞춰야 했던 TV 드라마의 특성상 덜어낸 부분들을 추가함으로서 등장인물들의 보다 세세한 일상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모든 인상적인 소품들이 주인공들과 '만나는' 모습들을 섬세하게 집어넣어 물건 하나에도 그것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이 타이틀의 모습은 '네멋대로 해라'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서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준다. 드라마로서 방대한 분량이 추가된 디렉터스 컷을 냈다는 것 자체도 평가받아야할 일이지만, 그것이 곧 작품을 보다 더 풍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로 작용하게 만든 것은 '네멋대로해라'가 왜 기존의 드라마와는 그토록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한가지 단서가 될 수 있을듯 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람을 평생토록 열광시키고 미치게 할수는 없다. 그러나 때론 그때의 그 감정이,  그 느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자신의 인생을 새로운 길로 안내하고, 평생토록 그것을 기억에 남도록 한다. '네멋대로 해라'는 그 자신의 팬들에게 마음속에 무언가를 간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늘 새롭게 각인시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흔치않은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DVD란 결국 그런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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