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r Drop - 상두야 학교가자 |
보통 선입견, 혹은 편견이란 것은 나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정도는 근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직접 겪지 않고 무엇을 판단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사람들이 그런 판단을 하기까지는 그전에 지금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비족은 여자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보기 드물고, 가수가 연기에 도전하면 대부분 초반 시청률만 올려놓고 어설픈 연기로 드라마를 망치기 마련이다. 또 삼각관계나 불치병이 나오는 드라마는 작품을 보지 않고 대충 스토리만 듣고 내용을 판단해도 대부분 맞아 떨어진다. 선입견이나 편견은 때론 시간을 절약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굳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대충은 맞는 기준을 제시해주니 말이다.
상두를 만나보셨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반드시 그 편견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접 겪어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진심’조차 모르고 지나가게 되며, 그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과 감동을 회복하기 힘들게 된다. 조금만 더 수고해서 확인하고 느꼈으면 될텐데, 사람들은 그게 귀찮아서, 혹은 이전까지의 그 뻔했던 결과들에 지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도 놓쳐버리게 된다.
KBS ‘상두야 학교가자’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드라마처럼 겉모습이 뻔해보이는 드라마도 별로 없다. 가수인(혹은 가수출신인) 비와 빈이 출연하고, 제비족이 고등학생이 되어 자신의 첫사랑에게 접근한다는 내용은 흔한 학원 청춘물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상두(비)-은환-민석(이동건)의 삼각관계와 팔란(홍수현)과 심란(정애리)이 알고보면 친모녀관계였다는 것 역시 설정만으로는 지극히 진부해보인다. 또 세라는 상두의 딸(사실 친딸은 아니다)인 보리(송민주)의 엄마이고, 심란은 은환의 친어머니 못지 않은 새어머니라는 ‘꼬고 또 꼬는’ 설정까지 더해진다. 만약 ‘상두야 학교가자’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채 대강의 이야기만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작품을 인기있는 가수 캐스팅해서 적당히 시청률만 얻으려는 그저 그런 작품쯤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조금만 참고서 ‘상두야 학교가자’를 직접 ‘겪어’본다면, 이 작품에는 편견을 넘어서는 ‘진심’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에 가수 비는 없다. 다만 ‘상두’를 열심히 연기하는 한 연기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운명처럼 지워진 설정 때문에 계속 괴로워하는 배우들도 없다. 다만 자신의 환경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숱한 진부하고 비극적인 설정에 사람들을 놓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도록 하는 대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채워넣고, 그 설정들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줌으로서 설정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내는 감동을 선사한다.
그 남자가 웃는 이유
겉으로 보기에 상두는 누구라도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제비족이고, 딸까지 있으며, 허풍만 센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은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실’이었다는 식의 고백을 시킴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핑계로 상두의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상두야 학교가자’는 상두라는 ‘사람’의 면면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그가 민석의 말대로 제비족에 애까지 딸린 인간 쓰레기라는 몇마디 말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히 제비족이고,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때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헌신적이고, 보리의 엄마라는 이유로 세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은환에게 다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오직 은환의 눈에 띄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민석이 반 협박에 가깝게 은환과 헤어질 것을 얘기해도 꿋꿋하게, 정말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은환에게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 은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수입원을 포기하고, 잠을 쪼개 온갖 일을 해야하며, 더 나아가서는 접근하지 않았다면 은환에게 멋진 남자로,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자신의 모습을 모두 포기하고 그녀에게 ‘인간 쓰레기’로 남을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그는 정말 사랑을 위해 일도 자존심도 모두 내팽겨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현실은 그가 은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한다. 모든 것을 갖춘 민석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때 말하면 그만이지만, 상두는 은환 앞에서 한번 웃기위해, 혹은 은환에게 한번 잘보이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야한다. 수학 문제 하나를 풀기위해 자신의 라이벌에게 자존심 다 포기하고 읍소까지 하면서도 정작 은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은 이정도는 늘 해줄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상두는 왜 남자가 안보이는 곳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여자 앞에서는 조금 무심한 듯, 그런건 다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듯 웃을 수 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애인앞에서, 혹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하나 내세울 것 하나없는 사람의 슬픔을, ‘상두야 학교가자’는 말로 항변하기보다는 하나씩 차근히 보여줌으로서 설정이 아닌 사람에게 조금씩 빠져들도록 한다.
이는 은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설정만으로보면 은환은 첫사랑의 환상에 빠져 곁에 있는 지금의 좋은 남자를 포기하는 여자이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은환이 상두를 사랑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그들사이에 있었던 ‘일상’을 보여줌으로서 은환이 상두에 대해 얼마나 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상두가 현재에서 은환을 위해 죽도록 노력하듯, 은환은 상두를 만나면 만날수록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은환의 기억속에서 상두는 처음에는 어렸을적부터 알고지낸, 돈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많은 아이였을뿐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제나 은환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남자였음이 드러난다. 지금의 상두가 그러하듯 은환은 상두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고, 그런 은환의 관계를 통해 이들의 사랑은 단지 ‘잊지못할 첫사랑’이라는 ‘설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두’와 ‘은환’만의 특별한, 일상이 녹아있는 사랑이 된다. 물론 민석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은환에게 상두만큼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환에게 있어 민석의 사랑이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면 상두의 사랑은 ‘경험’이고, 그것은 민석이 애초에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었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설정에 생명력을 덧붙이는 것이 그 설정속을 ‘열심히’ 살아가는 캐릭터의 평범한 일상임을 잘 알고 있다. 일상이 하나씩 쌓일수록 상두는 뻔한 제비족에서 ‘상두’가 되고, 은환의 사랑은 첫사랑에 관한 환상이 아니라 한 여성의 ‘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이 된다.
긍정의 에너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가면 갈수록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상두야 학교가자”라는 은환의 외침으로 시작되는 드라마의 오프닝은 제비족의 학교 진출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상두’가 ‘학교’에 ‘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상두의 일상을 통해 하나씩 쌓여가면서 그것은 보면 볼수록 웃을수만은 없는 것이 된다. 처음 상두가 학교를 간다는 사실만이 제시되었을때 그것은 제비족의 가벼운 행동이자 소동의 원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뒤에 깔린 상두의 일상은 상두가 학교에 가서 은환을 보기까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은 다시 은환의 과거와 맞물려 은환이 상두에게 학교에 함께가자고 했던 것 역시 얼마나 절절한 감정을 속에 숨긴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상두야 학교가자’의 오프닝은 겉으로는 밝고 희망차 보이지만 속으로는 우울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야말로 ‘상두야 학교가자’만의 독특한 힘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의 등장인물들은 민석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각박한 현실과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괴로워하는 대신 오히려 놀라울만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간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절대로 포기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제비족에 언제 죽을지 모를 딸까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 지낼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안되면 양파도 까고, 구슬이라도 꿰면서라도 현실을 뚫고 지나가려고 하는 것이 ’상두야 학교가자‘속 사람들의 태도이다. 아무리 주어진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웃는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만큼 이 드라마를 동화적이라 할만큼 순수하게 만들고, 그것이 드라마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매일 처해있는 현실에 울상짓고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것임을 알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어느새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까지 전염시켜 모두를 긍정적인 삶의 자세에 빠지게 만든다. 상두가 학교 운동장 주변에 앉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앉아 상두의 일을 돕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두가 속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그 자체는 가볍고 밝아보인다. 그러나 상두가 그것을 하는 배경에는 은환에게 떳떳하게 다가서기 위해, 그러면서도 보리를 살리기위한 상두의 절실함이 깔려있고, 힘들지만 그 절실함을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상두의 긍정적인 사고는 다른 사람들까지 흡수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 개인의 대책없는 행동쯤으로 보이던 상두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까지 전염시키면서 모두를 조금씩 좀더 착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괜찮은 상황에 놓여있는 민석이 의외로 가장 겉으로 고민을 많이 드러내는 캐릭터라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마치 관찰자처럼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 드러내지도 않고, 상두에게나 은환에게도 일단 웃기보다는 심각한 자세로 이야기한다. 한명은 최악의 상황에서 웃을 수 있고, 다른 한명은 ‘현실’의 ‘문제’부터 생각한다. 민석이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상두에게 ‘안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단지 철없고 밝기만한 남자와 생각 깊지만 너무 진지한 남자의 대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떻게 얘들을 울릴 수 있지?
하지만 이 긍정의 에너지는 이 드라마에 따뜻하고 밝은 힘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드라마를 그 어떤 신파조의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아무리 밝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간다해도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정말 강철처럼 견고해서 쉽사리 깨지지 않고, 그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현실과 부딪치는 순간, 이것은 그 상황에 좌절하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보다 훨씬 슬프게 다가온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웃으며 살아보려고 했는데 현실은 그 의지를 좌절시킨다. 그들이 그 현실의 벽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웃으려 하지만 결국 울 수 밖에 없게 되고, 그것은 드라마가 방영될수록 이들의 삶에 전염된 시청자들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심란이 팔란이 자신의 딸이었음을 알고 세라에게 울면서 마음을 고백할 때, 그것이 슬퍼지는 이유는 이들이 계속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내쏟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열심히, 그리고 밝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두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면서 살아가던 심란이 자신의 유일한 ‘죄’이던 딸을 다시 만날 때, 그리고 그저 상두하고 결혼해서 보리와 함께 행복하게만 살면 될것같았던 팔란이 심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에 그것은 그들의 삶의 태도와 대비되어 더 큰 눈물을 일으킨다. 누구도 울고 싶어서 울지는 않는다. 그저 살다보니, 자신의 그늘을 잊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두운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 슬픔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들이 이들을 보는 태도에도 그대로 이입된다. 그토록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부딪치는 것을 그대로 봐야할 때, 그리고 거기엔 희망조차 별로 없음을 알게 될 때 시청자들은 실컷 웃다가 갑자기 우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저 설정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등장인물들 각각의 상황은 정말로 등장인물과 시청자를 ‘괴롭히는’ 진짜 현실이 된다. 현실의 무게는 현실을 자꾸 비참하게만 보여주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속의 사람을 보여줄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상두야 학교가자’는 동화적이면서도 성숙하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학교를 배경으로 상두가 은환을 위해 하는 행동들이나 희서(빈)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상두의 행동같은 것은 때론 유치해보일 정도이지만 그런 요소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각 인물들의 긍정적인 일상과 맞물리면서 유치하다기보다는 순수한 느낌을 내고, 시청자로 하여금 오히려 이들이 계속 그런 상태로만 살기를 바라도록 만든다. 그들은 언제나 웃지만, 그 웃음을 위해 그들은 언제나 힘겹게 현실을 이겨나간다. 밝은 웃음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 그것이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서이다.
비, 감동의 비를 선사하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의 핵심에는 비의 놀라운 연기력이 자리잡고 있다. 가수로서도 ‘나쁜남자’의 진지한 모습과 각종 CF에서의 천진한 눈 웃음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그는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그 모습을 더욱 확장해서 보여줌으로서 이 드라마를 자신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그의 표정은 곧 드라마의 분위기이다. 그가 대책없이 웃고 떠들때는 드라마도 함께 즐거워지지만, 그가 어느순간 현실과 맞딱뜨리게 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되면 드라마도, 시청자도 모두 심각해지고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게 된다. 그 밝은 미소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현실은 무엇인가. 비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모습을 적절히 섞으면서 현실적인 톤을 맞추기보다는 양쪽의 모습을 모두 제대로 보여줌으로서 비현실과 현실, 웃음과 눈물이 맞부딪치는 이 드라마를 지배하고 있다. 차승원의 ‘보디가드’가 그랬듯, ‘상두야 학교가자’는 남자 주연배우 한명의 캐릭터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자리잡을 것이다. 다른 배우들도 매우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에 이해할 수 없을만큼의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의 힘에 의해서이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쉬운
그러나,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두야 학교가자’는 ‘걸작’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작품이고, 그래서 볼때 더욱 묘한 감정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활력이나 독특한 감수성은 대단한 것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만들기위해 너무 거친 방법으로 드라마를 이끌고 있다. 아무리 등장인물들이 아이같은 순수함을 가졌다지만 그런 상두의 순수함을 보여주기위한 사건들까지 아이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 드라마의 반쪽인 무거운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지환이 상두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상두를 바다에 빠지게 만든다든가, 혹은 조폭들과 싸우게 만드는 것은 지환의 평소 캐릭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 가볍고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물론 상두에게 시련을 주면서 상두와 은환을 더욱 가까워지게 하기 위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들은 이런 방법말고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문제만으로도 가까워질수도 있고, 갈등을 일으킬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상두는 계속 은환에게 제비족에 딸이 있다는 것을 속이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은 둘의 사이에 있어 어떤 사건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상두의 삶의 배경정도로만 작용하고, 실질적인 사건은 지환의 계략(?)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점은 아쉽다. 작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상당히 독특한데 그걸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전형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군데군데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과 맞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분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점과 맞물려 민석의 캐릭터가 좀더 살아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민석은 지금도 매력적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는 너무나 이성적인데다가 은환에게 잘해주려는 나머지 상두나 은환에 비해 ‘인간미’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때가 있다. 물론 그가 은환에게 상두의 또다른 모습을 고자질하거나, 무슨 못된짓을 꾸미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좀 인간답게 좀더 제대로 질투도 해보고, 상두까지는 아니어도 이 드라마의 다른 사람처럼 조금은 유치한척 자기 감정을 고백할 필요도 있지 않았나 싶다. 상두에 비해 훨씬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는 은환도 상두와 다시 사랑하기 위해 ‘10일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보고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다른 드라마라면 이것은 유치한 행동이 됐겠지만, 드라마 전체를 통해서 그 유치한 행동이 있기까지의 사건들과 감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그런 행동들은 어느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든 밝게 뚫고 나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민석도 이런 모습을 좀더 제대로 보여줬으면 드라마가 보다 활력을 얻을 수 있었을 듯 싶다.
또한 이 드라마가 가끔씩 지나칠정도로 자신의 장점을 남용하고 있다는 점역시 아쉽다. 이 드라마는 천진난만함에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현실의 충돌이 빚어내는 독특한 감정이 강점이 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때론 그것을 지나칠정도로 강조해 한계 범위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상두가 은환의 개 짱가가 죽은 사실을 듣고 있는 민석 옆에서 계속 장난을 치는 것은 이 드라마의 흐름에서 놓고 보면 어울리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오래되어 상두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속없는’ 느낌을 준다거나, 혹은 팔란과 심란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울음바다를 만드는 장면등은 조금만 더 절제를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다. 이미 충분히 슬프고, 드라마 자체도 그렇게 드러내놓고 사람을 울리는 드라마가 아님에도 가끔씩 몇몇 장면이 그 정서를 너무 설명하려 하는 것 같아 아쉽다.
이런 거친 느낌은 연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극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은환의 과거 회상 장면들이 너무 거칠게 끼어들어가서 드라마가 조금 산만하게 진행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보다 밀접하게 돌아갔으면 좋을 것을, 은환의 과거씬은 지나치게 은환의 시점에서 사건이 설명됨으로서 드라마의 전체적인 느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처음에는 상두의 캐릭터와 몇몇 설정들을 만들어내느라 가볍게 시작됐던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진지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의 독특한 분위기에 적응되기 힘들것이라는 것도 아쉽다.
물론 이는 드라마의 특징상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가뜩이나 MBC ‘대장금’과 SBS ‘왕의 여자’ 사이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이 드라마가 더욱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상두야 학교가자’는 볼수록 아쉬움이 더하는 드라마이다. 물론 이 드라마를 올해 가장 ‘잘만든’ 드라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올해 가장 ‘따뜻한’ 드라마중 하나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며, 더불어 종영이 얼마 안남은 지금 지금부터 보는 이 드라마의 가치를 알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이젠 케이블의 재방송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편견을 버리고 한번 첫회부터 천천히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신은 어느덧 상두의 표정 하나에 웃다가 우는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상두를 만나보셨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반드시 그 편견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접 겪어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진심’조차 모르고 지나가게 되며, 그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과 감동을 회복하기 힘들게 된다. 조금만 더 수고해서 확인하고 느꼈으면 될텐데, 사람들은 그게 귀찮아서, 혹은 이전까지의 그 뻔했던 결과들에 지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도 놓쳐버리게 된다.
KBS ‘상두야 학교가자’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드라마처럼 겉모습이 뻔해보이는 드라마도 별로 없다. 가수인(혹은 가수출신인) 비와 빈이 출연하고, 제비족이 고등학생이 되어 자신의 첫사랑에게 접근한다는 내용은 흔한 학원 청춘물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상두(비)-은환-민석(이동건)의 삼각관계와 팔란(홍수현)과 심란(정애리)이 알고보면 친모녀관계였다는 것 역시 설정만으로는 지극히 진부해보인다. 또 세라는 상두의 딸(사실 친딸은 아니다)인 보리(송민주)의 엄마이고, 심란은 은환의 친어머니 못지 않은 새어머니라는 ‘꼬고 또 꼬는’ 설정까지 더해진다. 만약 ‘상두야 학교가자’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채 대강의 이야기만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작품을 인기있는 가수 캐스팅해서 적당히 시청률만 얻으려는 그저 그런 작품쯤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조금만 참고서 ‘상두야 학교가자’를 직접 ‘겪어’본다면, 이 작품에는 편견을 넘어서는 ‘진심’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에 가수 비는 없다. 다만 ‘상두’를 열심히 연기하는 한 연기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운명처럼 지워진 설정 때문에 계속 괴로워하는 배우들도 없다. 다만 자신의 환경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숱한 진부하고 비극적인 설정에 사람들을 놓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도록 하는 대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채워넣고, 그 설정들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줌으로서 설정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내는 감동을 선사한다.
그 남자가 웃는 이유
겉으로 보기에 상두는 누구라도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제비족이고, 딸까지 있으며, 허풍만 센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은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실’이었다는 식의 고백을 시킴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핑계로 상두의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상두야 학교가자’는 상두라는 ‘사람’의 면면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그가 민석의 말대로 제비족에 애까지 딸린 인간 쓰레기라는 몇마디 말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히 제비족이고,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때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헌신적이고, 보리의 엄마라는 이유로 세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은환에게 다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오직 은환의 눈에 띄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민석이 반 협박에 가깝게 은환과 헤어질 것을 얘기해도 꿋꿋하게, 정말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은환에게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 은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수입원을 포기하고, 잠을 쪼개 온갖 일을 해야하며, 더 나아가서는 접근하지 않았다면 은환에게 멋진 남자로,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자신의 모습을 모두 포기하고 그녀에게 ‘인간 쓰레기’로 남을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그는 정말 사랑을 위해 일도 자존심도 모두 내팽겨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현실은 그가 은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한다. 모든 것을 갖춘 민석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때 말하면 그만이지만, 상두는 은환 앞에서 한번 웃기위해, 혹은 은환에게 한번 잘보이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야한다. 수학 문제 하나를 풀기위해 자신의 라이벌에게 자존심 다 포기하고 읍소까지 하면서도 정작 은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은 이정도는 늘 해줄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상두는 왜 남자가 안보이는 곳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여자 앞에서는 조금 무심한 듯, 그런건 다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듯 웃을 수 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애인앞에서, 혹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하나 내세울 것 하나없는 사람의 슬픔을, ‘상두야 학교가자’는 말로 항변하기보다는 하나씩 차근히 보여줌으로서 설정이 아닌 사람에게 조금씩 빠져들도록 한다.
이는 은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설정만으로보면 은환은 첫사랑의 환상에 빠져 곁에 있는 지금의 좋은 남자를 포기하는 여자이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은환이 상두를 사랑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그들사이에 있었던 ‘일상’을 보여줌으로서 은환이 상두에 대해 얼마나 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상두가 현재에서 은환을 위해 죽도록 노력하듯, 은환은 상두를 만나면 만날수록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은환의 기억속에서 상두는 처음에는 어렸을적부터 알고지낸, 돈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많은 아이였을뿐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제나 은환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남자였음이 드러난다. 지금의 상두가 그러하듯 은환은 상두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고, 그런 은환의 관계를 통해 이들의 사랑은 단지 ‘잊지못할 첫사랑’이라는 ‘설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두’와 ‘은환’만의 특별한, 일상이 녹아있는 사랑이 된다. 물론 민석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은환에게 상두만큼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환에게 있어 민석의 사랑이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면 상두의 사랑은 ‘경험’이고, 그것은 민석이 애초에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었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설정에 생명력을 덧붙이는 것이 그 설정속을 ‘열심히’ 살아가는 캐릭터의 평범한 일상임을 잘 알고 있다. 일상이 하나씩 쌓일수록 상두는 뻔한 제비족에서 ‘상두’가 되고, 은환의 사랑은 첫사랑에 관한 환상이 아니라 한 여성의 ‘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이 된다.
긍정의 에너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가면 갈수록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상두야 학교가자”라는 은환의 외침으로 시작되는 드라마의 오프닝은 제비족의 학교 진출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상두’가 ‘학교’에 ‘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상두의 일상을 통해 하나씩 쌓여가면서 그것은 보면 볼수록 웃을수만은 없는 것이 된다. 처음 상두가 학교를 간다는 사실만이 제시되었을때 그것은 제비족의 가벼운 행동이자 소동의 원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뒤에 깔린 상두의 일상은 상두가 학교에 가서 은환을 보기까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은 다시 은환의 과거와 맞물려 은환이 상두에게 학교에 함께가자고 했던 것 역시 얼마나 절절한 감정을 속에 숨긴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상두야 학교가자’의 오프닝은 겉으로는 밝고 희망차 보이지만 속으로는 우울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야말로 ‘상두야 학교가자’만의 독특한 힘이다. '상두야 학교가자‘의 등장인물들은 민석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각박한 현실과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괴로워하는 대신 오히려 놀라울만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간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절대로 포기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제비족에 언제 죽을지 모를 딸까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 지낼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안되면 양파도 까고, 구슬이라도 꿰면서라도 현실을 뚫고 지나가려고 하는 것이 ’상두야 학교가자‘속 사람들의 태도이다. 아무리 주어진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웃는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만큼 이 드라마를 동화적이라 할만큼 순수하게 만들고, 그것이 드라마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매일 처해있는 현실에 울상짓고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것임을 알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어느새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까지 전염시켜 모두를 긍정적인 삶의 자세에 빠지게 만든다. 상두가 학교 운동장 주변에 앉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앉아 상두의 일을 돕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두가 속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그 자체는 가볍고 밝아보인다. 그러나 상두가 그것을 하는 배경에는 은환에게 떳떳하게 다가서기 위해, 그러면서도 보리를 살리기위한 상두의 절실함이 깔려있고, 힘들지만 그 절실함을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상두의 긍정적인 사고는 다른 사람들까지 흡수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 개인의 대책없는 행동쯤으로 보이던 상두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까지 전염시키면서 모두를 조금씩 좀더 착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괜찮은 상황에 놓여있는 민석이 의외로 가장 겉으로 고민을 많이 드러내는 캐릭터라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마치 관찰자처럼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 드러내지도 않고, 상두에게나 은환에게도 일단 웃기보다는 심각한 자세로 이야기한다. 한명은 최악의 상황에서 웃을 수 있고, 다른 한명은 ‘현실’의 ‘문제’부터 생각한다. 민석이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상두에게 ‘안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단지 철없고 밝기만한 남자와 생각 깊지만 너무 진지한 남자의 대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떻게 얘들을 울릴 수 있지?
하지만 이 긍정의 에너지는 이 드라마에 따뜻하고 밝은 힘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드라마를 그 어떤 신파조의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아무리 밝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간다해도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정말 강철처럼 견고해서 쉽사리 깨지지 않고, 그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현실과 부딪치는 순간, 이것은 그 상황에 좌절하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보다 훨씬 슬프게 다가온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웃으며 살아보려고 했는데 현실은 그 의지를 좌절시킨다. 그들이 그 현실의 벽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웃으려 하지만 결국 울 수 밖에 없게 되고, 그것은 드라마가 방영될수록 이들의 삶에 전염된 시청자들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심란이 팔란이 자신의 딸이었음을 알고 세라에게 울면서 마음을 고백할 때, 그것이 슬퍼지는 이유는 이들이 계속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내쏟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열심히, 그리고 밝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두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면서 살아가던 심란이 자신의 유일한 ‘죄’이던 딸을 다시 만날 때, 그리고 그저 상두하고 결혼해서 보리와 함께 행복하게만 살면 될것같았던 팔란이 심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에 그것은 그들의 삶의 태도와 대비되어 더 큰 눈물을 일으킨다. 누구도 울고 싶어서 울지는 않는다. 그저 살다보니, 자신의 그늘을 잊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두운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 슬픔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들이 이들을 보는 태도에도 그대로 이입된다. 그토록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부딪치는 것을 그대로 봐야할 때, 그리고 거기엔 희망조차 별로 없음을 알게 될 때 시청자들은 실컷 웃다가 갑자기 우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저 설정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등장인물들 각각의 상황은 정말로 등장인물과 시청자를 ‘괴롭히는’ 진짜 현실이 된다. 현실의 무게는 현실을 자꾸 비참하게만 보여주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속의 사람을 보여줄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상두야 학교가자’는 동화적이면서도 성숙하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학교를 배경으로 상두가 은환을 위해 하는 행동들이나 희서(빈)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상두의 행동같은 것은 때론 유치해보일 정도이지만 그런 요소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각 인물들의 긍정적인 일상과 맞물리면서 유치하다기보다는 순수한 느낌을 내고, 시청자로 하여금 오히려 이들이 계속 그런 상태로만 살기를 바라도록 만든다. 그들은 언제나 웃지만, 그 웃음을 위해 그들은 언제나 힘겹게 현실을 이겨나간다. 밝은 웃음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 그것이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서이다.
비, 감동의 비를 선사하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의 핵심에는 비의 놀라운 연기력이 자리잡고 있다. 가수로서도 ‘나쁜남자’의 진지한 모습과 각종 CF에서의 천진한 눈 웃음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그는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그 모습을 더욱 확장해서 보여줌으로서 이 드라마를 자신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그의 표정은 곧 드라마의 분위기이다. 그가 대책없이 웃고 떠들때는 드라마도 함께 즐거워지지만, 그가 어느순간 현실과 맞딱뜨리게 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되면 드라마도, 시청자도 모두 심각해지고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게 된다. 그 밝은 미소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현실은 무엇인가. 비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모습을 적절히 섞으면서 현실적인 톤을 맞추기보다는 양쪽의 모습을 모두 제대로 보여줌으로서 비현실과 현실, 웃음과 눈물이 맞부딪치는 이 드라마를 지배하고 있다. 차승원의 ‘보디가드’가 그랬듯, ‘상두야 학교가자’는 남자 주연배우 한명의 캐릭터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자리잡을 것이다. 다른 배우들도 매우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에 이해할 수 없을만큼의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의 힘에 의해서이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쉬운
그러나,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두야 학교가자’는 ‘걸작’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작품이고, 그래서 볼때 더욱 묘한 감정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활력이나 독특한 감수성은 대단한 것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만들기위해 너무 거친 방법으로 드라마를 이끌고 있다. 아무리 등장인물들이 아이같은 순수함을 가졌다지만 그런 상두의 순수함을 보여주기위한 사건들까지 아이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 드라마의 반쪽인 무거운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지환이 상두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상두를 바다에 빠지게 만든다든가, 혹은 조폭들과 싸우게 만드는 것은 지환의 평소 캐릭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 가볍고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물론 상두에게 시련을 주면서 상두와 은환을 더욱 가까워지게 하기 위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들은 이런 방법말고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문제만으로도 가까워질수도 있고, 갈등을 일으킬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상두는 계속 은환에게 제비족에 딸이 있다는 것을 속이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은 둘의 사이에 있어 어떤 사건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상두의 삶의 배경정도로만 작용하고, 실질적인 사건은 지환의 계략(?)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점은 아쉽다. 작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상당히 독특한데 그걸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전형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군데군데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과 맞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분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점과 맞물려 민석의 캐릭터가 좀더 살아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민석은 지금도 매력적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는 너무나 이성적인데다가 은환에게 잘해주려는 나머지 상두나 은환에 비해 ‘인간미’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때가 있다. 물론 그가 은환에게 상두의 또다른 모습을 고자질하거나, 무슨 못된짓을 꾸미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좀 인간답게 좀더 제대로 질투도 해보고, 상두까지는 아니어도 이 드라마의 다른 사람처럼 조금은 유치한척 자기 감정을 고백할 필요도 있지 않았나 싶다. 상두에 비해 훨씬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는 은환도 상두와 다시 사랑하기 위해 ‘10일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보고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다른 드라마라면 이것은 유치한 행동이 됐겠지만, 드라마 전체를 통해서 그 유치한 행동이 있기까지의 사건들과 감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그런 행동들은 어느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든 밝게 뚫고 나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민석도 이런 모습을 좀더 제대로 보여줬으면 드라마가 보다 활력을 얻을 수 있었을 듯 싶다.
또한 이 드라마가 가끔씩 지나칠정도로 자신의 장점을 남용하고 있다는 점역시 아쉽다. 이 드라마는 천진난만함에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현실의 충돌이 빚어내는 독특한 감정이 강점이 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때론 그것을 지나칠정도로 강조해 한계 범위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상두가 은환의 개 짱가가 죽은 사실을 듣고 있는 민석 옆에서 계속 장난을 치는 것은 이 드라마의 흐름에서 놓고 보면 어울리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오래되어 상두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속없는’ 느낌을 준다거나, 혹은 팔란과 심란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울음바다를 만드는 장면등은 조금만 더 절제를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다. 이미 충분히 슬프고, 드라마 자체도 그렇게 드러내놓고 사람을 울리는 드라마가 아님에도 가끔씩 몇몇 장면이 그 정서를 너무 설명하려 하는 것 같아 아쉽다.
이런 거친 느낌은 연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극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은환의 과거 회상 장면들이 너무 거칠게 끼어들어가서 드라마가 조금 산만하게 진행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보다 밀접하게 돌아갔으면 좋을 것을, 은환의 과거씬은 지나치게 은환의 시점에서 사건이 설명됨으로서 드라마의 전체적인 느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처음에는 상두의 캐릭터와 몇몇 설정들을 만들어내느라 가볍게 시작됐던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진지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의 독특한 분위기에 적응되기 힘들것이라는 것도 아쉽다.
물론 이는 드라마의 특징상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가뜩이나 MBC ‘대장금’과 SBS ‘왕의 여자’ 사이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이 드라마가 더욱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상두야 학교가자’는 볼수록 아쉬움이 더하는 드라마이다. 물론 이 드라마를 올해 가장 ‘잘만든’ 드라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는 올해 가장 ‘따뜻한’ 드라마중 하나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며, 더불어 종영이 얼마 안남은 지금 지금부터 보는 이 드라마의 가치를 알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이젠 케이블의 재방송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편견을 버리고 한번 첫회부터 천천히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신은 어느덧 상두의 표정 하나에 웃다가 우는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