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읽기] 미안하다,사랑한다 12회 - 2
old/old_column 2004. 12. 23. 14:26
50. # 서경집 앞 공터

        

        오들희, 열려진 차 트렁크에서 백화점 옷 봉투들과 갈비 박스, 과일 박스, 굴비 박스등을 힘겹게 식식거리며 내린다.

        대천, 운전석에 굳은 듯 앉아 있다.

        

오들희  (운전석쪽을 얄밉게 노려 보며) 오빠! 이것 좀 안 도와 줄거야, 진짜?!!

대천    (그대로 굳어서)

오들희  증말 성격 이상하네, 저 오빠......난 정말 사과하러 온 거라구!! 왜 사람 맘을 기분나쁘게 오해 하구 그래?

대천    .......

오들희  그래, 오빠! 잘 났다! 잘 났어!...난 천하에 처 죽일 나쁜 년이구, 오빤 대자대비 부처님이다! 난 지옥 티켓 일번으로 끊어 놨으니까, 오빤 천당 가! 천당에 가시라니까요, 오빠는!!

대천    ......(암담해져서....핸들에 엎드려 버린다)

오들희  (빽) 이것 좀 안 도와 줄거야, 증말!!!




51. # 서경집 앞 일각

        오들희, 옷 봉투와 굴비 상자 등을 무겁게 한아름 들고 낑낑거리며 온다.

        

오들희  아우, 얘들은 어떻게 차두 안 들어오는 이런 후진 데 살아가지구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켜? (힘겨워서 잠깐 걸음 멈추고 서며 대천과 차가 있는 쪽을 노려보며) 너무 간을 키웠어, 내가!....부리는 사람은 부리는 사람만큼만 대접해 줘야 하는데, 너무 간을 키웠어!...사둔만 아니면 진짜...(하다가 다시 낑낑거리며 가며 힘 겹게 두리번거리며) 16-1번지가 대체 어디야? 근데?

  

52. # 서경 마당(낮)




        민현석, 마루에 앉아 고구마 먹고 있고, 서경과 갈치, 마당에서 트리 만들고 있다.

        

민현석  그래서? 니네들은 산타한테 무슨 선물 받구 싶은데?

서경    음...난...나는요, 인형하구요, 옷 하구요, 신발 하구요, 과자요.

민현석  갈치는?

갈치    외삼촌요.

민현석  외삼촌?

갈치    네...외삼촌보구 호주 가지 말구 우리랑 계속 살라구 산타 할아버지가 말 좀 잘 해 줬음 좋겠어요.

서경    나두요....나두 인형하구 옷 말구요 외삼촌요.

민현석  삼촌이 호주에 갈거라구 그래?

갈치    (걱정스럽게 고개 끄덕이고)

민현석  걱정하지 마. 우리 갈치가 착하게 살아서 산타 할아버지가 외삼촌한테 잘 말해 주실거야.

갈치    (푸 한숨 쉬고) 제가 앤 줄 아세요? 산타 할아버지 같은 건 원래 없는 거, 저 다 알아요.

서경    아냐, 산타 할아버지 있어, 바보야.

갈치    없어.

서경    아냐, 있어!! (두 사람 토닥거리며 싸우고)

민현석  (두 모자를 안쓰럽게 보는데)




        이때, “실례합니다!” 하며 오들희, 선물 무겁게 들고 들어선다.

        오들희를 발견한 민현석, 흠칫 표정이 굳고.

        서경과 갈치,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서경, 깜짝 놀라며 “엄마아”하며 울상이 되어 갈치의 뒤에 숨는다.

        

오들희  아우, 힘들다...그래두 내가 잘 찾어 왔네?.....아가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서경    (울상이 되어) 흐으응.....엄마아아아....

민현석  (서늘하게 지켜보는)

갈치    누구세요?...(하다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다. 갸웃하는데)

오들희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 아줌마?

갈치    네.

서경    (갈치 뒤에서 여전히 겁 먹고) 엄마아아아....(하고 울상을 하고 있고)

오들희  나 가수 최윤 엄마야...테레비에서 많이 봤지?

갈치    (그제야 아아....하고) 최 윤 형아두 접때 우리 집에 왔었는데.

오들희  그래애?...우리 윤이가 왔었어? (문득 자신을 보고 있는 민현석에게 시선을 주는데)

민현석  (태연한 표정으로 관심 없다는 듯 고구마 까 먹고)

서경    (여전히 엄마....하며 겁 먹은 표정으로 울먹이며) 가라, 그래...저 아줌마 집에 가라 그래. 시이....

갈치    (서경을 돌아보고) ..왜 그래, 엄마?....어른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오들희  지난 번엔 내가 정말 미안했어, 아가씨....그래서, 내가 사과 하러 온 거야....미안해.       미안해요, 정말...응?

서경    (그래도 여전히....엄마아...하며 울먹이며) 저 아줌마 집에 가라 그래, 갈치야.

오들희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마당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증말 증말 잘못했어요 ,아가씨.

민현석  (곁눈질로 흘끗 그런 오들희 보고)

갈치    (오들희 같은 어른의 갑작스런 행동에 오히려 당황하고)

서경    (엄마아....하며 울먹이던 것 멈추고)  

오들희  용서해 줘....이렇게 빌께...용서해 줘, 아가씨.

서경    (눈이 동그래서 보는)

오들희  (애절하게) 미안해...용서해 줘....용서해 줘요, 응?




53. # 윤 병원 로비 앞/ 윤 차안




        무혁이 운전하는 윤의 차, 로비 앞으로 들어오고 있다.

        윤, 입술이 창백해져 숨을 거칠게 쉬고 있고, 은채, “윤아...윤아...” 바들 바들 떨며

        윤을 꼭 끌어 안고 있다.

        무혁, 백미러로 그 모습 보다가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내린다.

        뒷좌석 문을 열고, 윤을 들춰 업고 뛰어 들어가는 무혁.

        은채, 탈진할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사람의 뒷 모습을 본다.




54. # 병실 복도




        무혁, 윤을 업고 뛰고 있다.




윤      (숨을 헐떡이면서도 힘겹게 말하는) 그래두....안돼, 형은.

무혁    ......

윤      나한테....안된다구...알아?

무혁    ......

윤      형이랑...난....달라.

무혁    ......

윤      가능성이....있단 말야, 난....열중 쉬어하구....있지 만은...않...(하다가 힘겹게 숨을 쉬는)

무혁    너 지금 쪽팔려서 괜히 말 많은 거 알겠는데, 입 좀 닫지!....나까지 숨 차 넘어가겠다. (뛴다)




55. # 윤 병실




        무혁, 윤을 침대에 눕힌다....윤, 눈을 감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 쉬다가...점점 가쁜 숨소리가 잦아 들며 잠 속으로 빠져 든다.

       무혁,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주려다...문득 이불이 윤 얼굴의 반을 덮는다....무혁, 서늘한 표정으로 피식 웃다가 다시 이불을 끌어 내려 가슴까지 덮어준다.



56. # 윤 병실 앞  



        무혁, 문 닫고 나오는데, 저 앞으로 은채, 고개를 푹 떨구고 털레털레 걸어온다.

        무혁, 그런 은채 보다가 은채의 바로 앞 까지 걸어가 걸음을 딱 멈추고 선다.

        은채, 그제서야 고개 들어서 무혁을 보는.




무혁    (씨익 웃으며 은채에게 윙크한다)

은채    (찢어지게 노려보는)  

무혁    (무안하게 보다가 스쳐 가려는데)

은채    (무혁을 탁 잡는다)

무혁    ......

은채    내가 우습니? 윤이가 우스워?!!

무혁    (피식 웃는)

은채    (언성 높아져) 왜 함부루 굴어? 니가 무슨 짓을 해두 반항두 못하는 힘 없구 약한 애라구 함부루 구니? 니가 어떻게 해두 손 하나 못 쓰는 아픈 애라구...그래서 함부루 굴어?  

무혁    ......(그게 아냐, 은채야...그러나, 마음을 드러낼 수 없어서....애써 웃는)

은채    윤이한테 이럼 안되지, 아저씨....여자가 뭐라구...내가 뭐라구....윤이가 아저씰 얼마나       좋아했는데....사람이라면 이렇게 뒤통수 치면 안되지 않어?....아저씨두, 나두!

무혁    (눈은 슬픈데, 입은 애써 웃고 있다.)

은채    다신 오지 마!

무혁    .......

은채    꺼져, 아저씨!

무혁    ......

은채    (매몰차게) 내 인생에서 그만 꺼져 줘요....부탁하께.

무혁    .......

은채    (그대로 병실쪽으로 간다)

무혁    (상처를 입었다...눈빛은 아프지만.....입은 웃으려고 애쓰는....)




57. # 윤 병실

        은채, 병실 문 들어서서 병실 문에 등을 댄 채 허허롭게 윤을 보고 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58. # 서경집 앞 길(밤)




        무혁,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다.




59. # 서경방




        서경의 손에 끼워지고 있는 고급 반지...오들희가 서경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있다.




오들희  어때요? 맘에 들어? 이쁘지?

서경    (그래도 여전히 두려운 표정)

갈치    (오들희가 사 온 밍크 코트와 서경의 옷, 화장품, 가방, 구두등 꺼내놓고 보며 와아...감탄하고 있다.)

오들희  (예쁜 모자 하나를 서경의 머리에 씌워주고) 아우, 이쁘다.....잠깐만, 아가씨...이것두       한번 입어봐. (하며 밍크 코트를 입혀 준다)

서경    (어벙한 표정으로 오들희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하고)

갈치    우와아...

오들희  어때? 니네 엄마 이쁘지? 죽음 이지?

갈치    네에...공주님 같애요.

서경    (그제야 좋아서 헤헤 웃는다)

오들희  역시 꼬맹이 니가 보는 눈이 있구나....아까 이름이...뭐라 그랬더라?

갈치    갈치요. 김 갈치!

오들희  갈치?...이름 진짜 스페셜하게 지었다?...아줌마한테두 갈치가 참 스페셜한데...밥상에       꼭 갈치가 있어야 밥을 먹잖아, 난.

갈치    ....예. (고개 끄덕이는)

서경    (그제야 조그맣게 한마디 하는) .....내가 지었는데...

오들희  응?

서경    갈치 이름요....(자랑하듯) 내가 지었어요.

오들희  그래요오?.....참 멋진 엄마구나...

서경    (그제야 환하게 헤 웃고)

오들희  어머, 아가씬...아니, 갈치 엄마는....웃는 모습이 참 이쁘구나....(서경 얼굴을 가만히       잡으며) 웃는 얼굴이 차암...(하다가...말을 멈춘다....서경의 얼굴에서 뭔가 이상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표정이 묘해지는)

서경    (생글거리며 천진하게 오들희를 보고 있는)

오들희  갈치 엄마.....예전에 우리 한번 만난 적 없나?

서경    (무슨 소린 지 몰라...눈만 꿈뻑꿈뻑)

오들희  (서경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 듬는다)....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이상하게 참 낯이       익네....이 눈이랑 코랑 입이랑....(자기도 눈물이 그렁해지며) 갈치 엄말 보구 있으니까...왜 이렇게 눈물이 날라 그러지?

서경    (천진한 표정으로 눈만 꿈뻑꿈뻑)

오들희  (눈가를 훔치며) 이상하네....왜 이렇게 눈물이 날라 그러지....




60. # 민현석방




        스텐드를 켜놓고, 노트북 앞에 앉은 민현석, 서늘한 미소를 머금고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오들희와 윤과 무혁과 서경의 사진...

        민현석, 마우스를 클릭해서 네 사람의 모습을 가족 사진처럼 합성한다.




민현석  (작업하며 중얼거리는) 인과 응보...사필 귀정....인과 응보.....사필 귀정....(입가에 흘      리는 미소가 서늘하다)




61. # 서경집 앞 계단




        대천, 계단에 앉아 있다. 담배 한 개피를 손으로 잘게잘게 뜯어 거의 가루를 만들었다.

        이때, 저 앞으로 나타나는 무혁, 벽을 돌아서다가 대천을 발견한다. 흠칫 미간이 흔들리는.



대천    (사람의 기척에 고개를 들다가 무혁을 보고는 당혹스런 표정 짓고)

무혁    (일단....꾸벅 인사하고) 여긴....어쩐 일이세요?

대천    (말을 못한다...보다가.....시선 떨구고 담배를 잘게 부수는...손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무혁    (의아한 표정으로 보는)




62. # 서경집 마당




        무혁,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마루에 갈비 박스와 굴비 박스, 사과, 귤 박스 놓여 있고, 마당 한켠에 새 연탄이 가득 쌓여 있다.  

        의아한 표정으로 보던 무혁, 문득 마루 아래 놓인 신발을 본다.

        마루 아래에 서경과 갈치의 신발옆으로 오들희의 하이힐이 놓여 있다.

        이때, 서경집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서경과 갈치의 웃음 소리에 섞인 웃음소리...분명히 오들희의 웃음 소리다.

        창백해지는 무혁.




63. # 서경방




        서경, 오들희가 사온 옷과 구두를 신고, 패션쇼 하듯 방안을 걷고 있다. 갈치, 서경의 옷과 구두를 신고 오들희를 따라서 걷는다.  

        오들희, 두 사람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 웃는다. 웃음 끝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이때, 문 벌컥 열리며 무혁이 들어선다. 서경과 갈치, “외삼촌!” 부르고.

                  

무혁    (오들희를 보자 눈빛이 무섭게 일렁인다)

오들희  (무안하게 웃으며) 미스타 차, 왔어?

무혁    ......

서경    외삼촌, 저 아줌마가요, 옷이랑요 구두랑요 음...모자랑요, 음...반지 사줬다아? 짜안..(하며 손에 낀 반지를 무혁에게 보여준다)

무혁    (흠칫)

오들희  (어색하게 웃으며) 지난번 일, 누나한테 사과하러 왔어....순서가 틀렸다는 거 아는      데...늘 목에 가시처럼 걸렸었어.

무혁    (서늘하게 보는)

오들희  (무혁의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라 궁색하게 웃는...) 정식으로 사과하께...정말 미안      해.

갈치    저 아줌마가 연탄도 들여놔 주시구요, 갈비랑 과일이랑 먹을 것도 이따만큼 많이 사오셨어요.

무혁    (그래도 여전히 서늘한 시선 멈추지 않고)

오들희  ...(무혁의 시선 어색하게 피하며 시계보며) 어머...시간이 벌써 저렇게 됐네....가봐야       겠다. (하며 일어선다)

무혁    .......

오들희  참.....몸이 많이 아프다면서? 미스타 차?

무혁    (흠칫)

오들희  (쇼핑 봉투 하나 들어보이며) 여기...비타민이랑 영양제 같은 거 들었거든....하루에 세알씩 꼭 챙겨 먹어.

무혁    .......

오들희  (무혁의 시선에 다시 움찔하며 방문 열고 나가려다가 무혁을 돌아보고) 미스타 차 말이 맞어. 내 자식 인생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두 소중한 거야. 맞는 말이야.

무혁    ......

오들희  자식이 저 모양이 되다 보니까, 내가 잠깐 돌았었나봐....에미란 게 그래....자식이 눈      을 가리면 옳은 거, 그른 거, 해야 될 일, 안 해야 될 일, 구분을 못해. 할 수가 없어. 자식이 눈을 가리면.

무혁    ......

오들희  미스타 차도 나중에 부모돼서 자식 낳아보면 내 맘 이해 할거야.

무혁    .......

오들희  미스타 차가 너그럽게 좀 용서해줘, 응? (무혁이 대답을 않자) 용서해줘, 응?

서경    (툭 따라하는) 용서해줘, 응?

무혁    (흠칫, 서경을 보는데)

서경    (천진하게) 이쁜 아줌마...외삼촌이 용서해 줘, 응? (자기도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 오들희를 향해 밝게 웃는)

무혁    (가슴이 시리다)

오들희  (서경을 향해 고맙다고...웃는...웃음 끝에 또 눈물이 묻어난다.)

무혁    ......




64. # 서경 마당




        오들희, 마당으로 나온다. 서경과 갈치, 따라 나와서, “안녕히 가세요” 인사 하고.




오들희  그래...우리 또 보자...또 놀러 오께...(서경의 풀어진 머플러 다시 매주고...찜찜한 표      정으로 무혁방 쪽을 보는)



65. # 무혁방




        무혁, 멍한 표정으로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값비싼 밍크 코트, 숙녀복, 가방, 구두등...오들희가 서경을 위해 사 온 선물들을 눈으로 휘 훑어본다.

        무혁, 한쪽에 놓인 쇼핑 봉투를 뒤집어 본다.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이 들어 있다.

        잠시 후, 서경, 룰루랄라 하며 들어선다....오들희가 가져온 옷들을 다시 입어보고, 모자도 써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그 모습을 허허로운 표정으로 보는 무혁 위로 좀 전에 서경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서경(E)  용서해줘, 응?....이쁜 아줌마...외삼촌이 용서해줘, 응?

무혁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울컥 치미는 것 같다) 누나....

서경    (선물들에 정신이 팔려 있고)

무혁    누나!!

서경    (무혁 보며) 응?

무혁    용서 하까, 그냥?

서경    (무슨 소린 줄 모르고) 엉?

무혁    아까 그 이쁜 아줌마....용서 해주까, 우리?

서경    (환하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는) 응...응.

무혁    (피식...씁쓸하게 웃으며 오들희가 사온 영양제들을 만지작거리며 보는데)




        이때, 갈치, 쟁반에 유리잔 (갈색 액체 같은 것이 든)을 받쳐서 들어온다.




갈치    이거 드세요, 외삼촌!

무혁    이게 뭔데?

갈치    아까 그 아줌마가 갖구 온 건데요...외삼촌 타서 주라구 했어요.

무혁    뭔데, 이게?

갈치    오가핀가 뭔가 하는 물에다가요, 무슨 버섯 꿀이라 그랬는데?

서경    내가 먹을거야...(하며 컵을 집으려는데)

갈치    엄마, 쫌! 아줌마가 이건 삼촌 약이라 그랬잖아.

서경    (뿌우해서) 알았어어....먹어요, 삼촌.

무혁    이게 약이래? (갸웃하며 마시는데)

갈치    예...심장에 좋은 약이랬어요....심장이 아파요? 외삼촌?

무혁    (생각 없이) 아니...(하며 마시다가 갑자기 푸후 하며 물을 뱉는다...무섭게 싸늘해지는 표정)

서경    (놀라서 보는)

갈치    (눈이 동그래서 보는)

오들희(E) 몸이 많이 아프다면서? 미스타 차?      

무혁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에 눈빛이 무섭게 싸늘해진다....동화책과 스케치북 쌓아 놓은 곳을 거칠게 뒤지기 시작하는)




        서경, 갈치, 무슨 일인가 벙해서 보고.




무혁    여기....여기....엑스 레이 필름 있던 거 어쨌어?

서경    (벙한)

갈치    엑스레이 필름이요?

무혁    그래, 이렇게 해골 사진 같은 거....외삼춘 꺼 있잖아!!!

갈치    (무혁의 갑작스레 무서워진 표정에 겁 먹으며) 그거 접때...최 윤 형아가 가져 갔는      데...

무혁    뭐? (눈빛이 무섭게 바르르 떨리는)




66. # 서경 마당(밤)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진 무혁, 걸어 나온다. 꾹 쥔 주먹....눈가가 무섭게 떨려온다.      

오들희(E) 몸이 많이 아프다면서? 미스타 차?

무혁    ......

오들희(E) 여기, 비타민이랑 영양제 같은 거 들었거든....하루에 세알씩 꼭 챙겨 먹어.

무혁    ......

갈치(E) 아까 그 아줌마가 갖구 온 건데요....심장에 좋은 약이랬어요....심장이 아파요? 외삼      촌?

무혁    ......

        

        무혁,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오들희가 가져온 사과 박스, 귤박스를 바닥에 집어 던지기 시작한다.

        그 위로 다시 들리는 오들희의 음성들.




오들희(E) 자식이 저 모양이 되다 보니까, 내가 잠깐 돌았었나봐....에미란 게 그래....자식이       눈을 가리면 옳은 거, 그른 거, 해야 될 일, 안 해야 될 일, 구분을 못해. 할 수가       없어. 자식이 눈을 가리면.

무혁    ......(갈비 박스도 집어 던지고)  




        서경과 갈치, 밖으로 나오다가 성난 사자같은 무혁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무서워서 둘이 꼭 끌어 안는다.




오들희(E) 미스타 차도 나중에 부모돼서 자식 낳아보면 내 맘 이해 할거야.

무혁    (으아아...소리 지르며 쌓아둔 연탄들도 다 집어 던진다)

오들희(E) 그럼, 제 심장...제 심장이라도 떼 주께요, 선생님....제 심장이라두 떼서 주면 되잖       아요, 선생님!




        마치 거친 들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집어 던지던 무혁....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껄걸 웃는다.      

        서경과 갈치, 또 왜 저러나?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오들희(E) 미스타 차 말이 맞어. 내 자식 인생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두 소중한 거야. 맞는 말이야.

무혁    (까만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웃어 제낀다.)        




67. # 윤 병실




        조명등만 안온하게 켜진 병실. 오들희, 윤의 손을 꼭 잡고 앉아 있다.




오들희  알어....벌 받을 거야...엄마 꼭 벌 받을거야, 윤아.....하느님이 혹시 잊어버리구 벌 안       주시면...니가 꼭 줘.....나중에....나중에.....너 건강해져서....누가 와서 건드려두 꿈쩍 않게 튼튼해지거든....너라두 엄마 꼭 벌 줘.....알어...엄마가 지은 죈 엄마가 다 받을  ....꼭 다 받을거야. 아들....




68. # 오들희 집 대문앞




        노기 어린 무혁, 오들희의 집 대문을 사정없이 거칠게 두드려 대고 있다.




69. # 은채방




        숙채와 민채, 잠들어 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 멀게 들리고 있다.

        두 자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평온하게 잘 자고 있다.




70. # 대천방




        대천, 벽에 기대 앉아 생각에 잠겨 있고....혜숙, 잠들어 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혜숙    (자다 깨서) 무슨 소리야, 이게? ....우리 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아냐?

대천    (멍해서 앉아 있는)

혜숙    아우, 누구야? 윤이네 집에 아무도 없는데?.......당신이 좀 나가봐. 술 취한 미친 놈이면 쫓아버리구.

대천    .......




71. # 오들희 정원




        대천, 걸어오는데.....거칠게 문 두드리는 소리, 여전히 들린다.




72. #오들희집 대문앞




        주먹이 부서질 것처럼 대문을 두드리고 있던 무혁...허탈해져서 천천히 손길을 멈춘다.




무혁    (눈물이 그렁해진...허탈한) 당신이 원한 게 그거 였어?....당신이 원한 게 내 심장이었어?....(허허 웃다가....갑자기 울컥하며)나두.....나두.....니 아들이란 말야!.....(점점 격앙되는) 나두 윤이처럼 당신이 만들어서, 당신이 세상에 내놓은, 당신 핏줄이란 말야!!




73. # 오들희 정원




        대천, 충격받은 표정으로 멈춰선다. 무혁의 피 맺힌 절규, 그대로 들려온다.




무혁(E) 나두 당신 아들이란 말야!!!



74. # 오들희집 대문앞

        

        무혁, 눈물 철철 흘리며 소리 치고 있다.




무혁    나두 당신 아들이라구! 당신 아들이라구, 사모님!!  




        무혁, 그 자리에 무너지듯 무릎 꿇고 주저 앉고 만다...참았던 설움이 쏟아진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서럽게 우는.




75. # 오들희 정원




        대천의 그렁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린다.




76. # 오들희 집 앞




        은채, “괜찮다...괜찮다...괜찮다...”중얼거리며 소주에 빨대 꽂아서 먹으며 걸어오고있다. 걸어오던 은채, 뭔가 발견하고 당황하며 걸음을 멈춘다.

        무혁이 거의 탈진한 표정으로 눈 감고 담벼락에 기대어 주저 앉아 있다.




은채    (어이가 없다)

무혁    (그대로 꿈쩍 않고)

은채    (그대로 무시하고 가려다가...다시 걸음 멈추고 돌아본다. 속이 상한다. 무혁에게 다가가 몸 굽히고 앉으며) 아저씨...왜 여기서 이러구 있어! 일어 나!! 얼어 죽어요!!  얼어 죽는다구, 아저씨!! (무혁을 흔드는데)

무혁    (갑자기 은채를 와락 끌어 안는다)

은채    (당황하지만...반항하지 않는다)

무혁    (깊숙히...바스라질 듯이 은채를 꼭 끌어 안는)

은채    (그대로.....가만히 있다)




        가로등 불빛이 쓸쓸하다.

        시간경과.

        가로등 불빛 아래, 무혁과 은채, 여전히 꼭 끌어안고 서 있다.

        무혁은 눈 감고 있고, 은채는 눈 똑바로 뜬채 굳은 듯 서 있다.




은채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이다) 만약에요...

무혁    .....

은채    만약에....

무혁    ......

은채    만약에요...윤이가 잘 못 된대두....아저씨한텐 안 가.

무혁    ......

은채    무슨 일이 있어두 아저씨한텐 안 가요....죽어두.

무혁    ........

은채    그러니까, 아저씬 아저씨 갈 길 가, 지금부터.

무혁    ......

은채    .....우린...다음 세상에 만나자...

무혁    ........

은채    ....아저씨하구 나...이번 세상에선 아닌 거 같애요.

무혁    ......

은채    다음 세상에서 만나요, 우린....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저씨 안 놓치께.

무혁    (천천히 눈을 뜬다.....허탈한 동공)

은채    .....

무혁    (은채를 껴안고 있었던 팔을 천천히 푼다...붙들고 있던 마지막 끈마저도 끊어진 기분이다...그대로 허허로운 표정으로 은채를 비켜서 걸어간다)

은채    (그대로 바위처럼 멈춰 서 있는)

무혁    (앞만 보고....뚜벅 뚜벅 걸어간다)

은채    (멍하게 멈춰 서 있는...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무혁     .......(등을 돌린 은채를 뒤로 두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F.O.

                                                

77. # 서경집 외경 (아침)




78. # 서경방




        서경과 갈치, 잠들어 있다. 무혁의 모습은 없다.




79. # 호텔 욕실




        무혁, 샤워하고 있다.




80. # 호텔방




        무혁, 샤워 가운 입고 나온다...머리를 털고, 샤워 가운을 벗고 윗옷을 입는데, 이때,

        거울에 민주의 모습이 비친다.

        슬립 차림의 민주,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다.

        

민주    (눈을 감은 채) 궁금한 게 있는데....당신 혹시...은채...진심이었어?

무혁    (말 없이 옷 입고 있는)

민주    (눈을 뜨고 보며) 나처럼 목적이 아니구...진심으루 좋아했었지? 은챈?

무혁    ......

민주    난 왜 만나 준거야?...똑같은 까인 인생끼리 불쌍하니까...적선하는 셈 치구 만나준거야?

무혁    (외투까지 다 껴입고는 나가려는데)

민주    당신, 지금 막 살지?

무혁    (잠깐 걸음 멈추고 민주 쪽으로 오더니 주머니에서 10만원권 수표를 하나 꺼내서 민주 옆 다탁에 놓고 간다)

민주    (기가 막혀서 웃다가....표정 서늘해지며....수표를 찢어 버린다....이런 취급을 당하면      서도 무혁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럽다)

        

81. # 은채 동네 슈퍼 앞




        은채, 두부와 파, 오렌지 쥬스등을 사들고 슈퍼에서 나온다. 표정이 멍하다.




82. # 오들희 집 앞




        오들희, 커다란 김치통 하나를 끙끙거리며 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차를 닦고 있던 대천, 얼른 달려 가 거든다.




대천    뭡니까, 이게?

오들희  응, 김장 한거....갈치네 갖다 줄려구.

대천    (순간 힘이 쑥 빠져 김치통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오들희  오빠아!....아까운 김장 다 쏟아질 뻔 했네....정신을 엇다 두구 있는 거야, 지금?

대천    그만 하자!

오들희  엉?

대천    그만 하자, 오들희!!

오들희  오빠!

대천    너 더 이상 가면 안돼! 정말 천벌 받어, 너!!!

오들희  (무슨 말인 지 안다)....아니이....그게 아니야, 오빠....이건 정말 순수하게...순수한 마      음으로 갖다 주려는 거야....갈치랑 서경이 무혁이...걔들이 이뻐서...불쌍해서...그래      서.....

대천    (버럭) 그만 하자구, 제발!! 어디까지 갈래? 어디까지 갈거야, 너?!...니 아들 목숨만 중요해! 차군두 지 부모한텐 세상에 뭘 주구도 못 바꾸는 귀하고 소중한 아들이야!

오들희  (정말 진심이다) 오해라니까, 정말!!....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서...내 자식 같애서...정      말 그래서....

대천    (O.L.) 윤이는 희망이라두 있잖아...무혁이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손 놓구 있다 죽는 거 밖엔 방법이 없대! 무혁인!!....윤이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리구 절 살리려는 엄마라두 있지만...무혁이는 그것도 없어!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 누이랑 어린 조카밖에 없어, 무혁인!

오들희  (정말로 진심인데...) 오빠...정말 난....

대천    (O.L.) 무혁이 그냥 놔 둬....남은 생이라두 외롭지 않게...서럽지 않게 살다 가게 해주자, 제발.....오들희...그만 하자. 응?

오들희  (울상이 되어..답답하다..) 그런 거 아닌데....정말 그런 거 아닌데....    




83. # 오들희 집 대문앞




        은채의 손에 들려 있던 봉지가 툭 떨어진다...오렌지 쥬스병은 산산 조각이 나고...파와 두부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은채, 충격으로 안색이 창백하다.....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게 있다가...갑자기 휙 돌아서 달려 가기 시작한다.




무혁(E) 내가 살려주께. 윤이 내가 살려 주께.  

은채    (눈물이 그렁해 이를 앙물고 뛰는)

무혁(E) 내 심장 떼서 윤이 줄테니까, 너, 나한테 올래?

은채    (뛰다가 결국 넘어진다.....)

무혁(E) 내가 살아 있는 시간까지만 나한테 올래?!!

은채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힘겹게 일어선다...그러다 다시 온 몸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버리는)

은채(E) 아까 내가 자세히 못 들었는데, 한번 더 말 해 줄래요? 언제 죽는다구, 아저씨?

무혁(E) ....길면 세 달 후...짧으면...건...안 물어봤구.

은채(E) 죽긴 확실히 죽어, 아저씨?




84. # 플래시백(11회 #19)

은채    (노려 보다가) 좋아. 아저씨한테 가께.

무혁    (웃을려고 하는데....웃음이 안 나온다....당황했다.)

은채    (무혁에게 화가 나 거의 막가는 심정이 된다) 윤이만 살려준다면....뭔들 못하겠어?....온 몸을 바쳐 충성하지, 내가! 잠두 같이 자 주께.

무혁    (웃을려고...애쓰는데...안 웃어진다...)

은채    꼭 죽어, 아저씨!  

무혁    ......

은채    꼭 죽어서 윤이 살려줘! 약속 지켜!




85. # 거리




        은채, 끄응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죽을 힘을 다해 다시 뛰어간다.




86. # 서경 마당




        무혁, 서경, 갈치와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고 있다.

        서경이 술래를 하다가...“앗, 외삼촌 움직였어요” 하고.....무혁이 걸린다.

        

무혁    아...못 봤는데, 분명히...(꿍얼대며 마루 기둥 있는 곳으로 가 선다...눈을 가리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빠르게 말하고, 휙 돌아보는)

    

        서경과 갈치, 아예 움직이지를 않는다....무혁을 향해 약오르지? 혀 쏙 내밀고.




무혁    (저것들...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고 다시 등을 돌리고 눈을 가리고, 천천히 말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휙 돌아서다가 당황하는 표정)




        무혁의 눈앞에 은채가 서 있다.




무혁    (당황한다...눈 앞에 은채가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

은채    (아무 말도 않고 주먹으로 무혁의 가슴 팍을 힘껏 때린다...비로소 참아 왔던 울음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온다.)

무혁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맞고만 있다가....은채의 두 팔을 잡는다....갑자기 왜 이러냐는 표정)

은채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눈물 흘리며 무혁을 노려보는데서)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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