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니어스의 辨明] P : Phone
old/old_column 2004. 3. 8. 12:17
One-Side Love 는 컬럼시작한지 최초로 리플이 하나도 없습니다.
짝사랑에 대해선 언급하기도 싫으신가부져?
그 심정 백번 이해합니다 ㅋㅋ

오늘은 Phone, 전화 이야깁니다.

저번주 또 띵겼기 때메...
오늘 별로 입맛도 없고 해서리 점심시간 띵기고 글이나 쓸랍니다...


1875년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해낸 이후
이 전화라는 놈이 소식전하는데나 쓸일줄 알았지
사랑하는 남녀의 구애의 수단으로 자리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네... 20세기 들어와서 모든 남녀간의 사랑은
전화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전 처럼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날라줄 유모를 꼬실 필요도 없어졌고,
돌담 처마 밑에 편지를 숨길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또 한사람에 하나씩 핸펀 들구 다니면서부터는
부모님 눈치 보느라 전화하기 어려워 하는것도 없어졌고
전화번호만 알면 다이렉트로 그사람과 연락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좋은 점만 있는 넘이 있습니까?

전화...
사랑하는 사람과 직접 통하고,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는 위치추적까지 ㅡㅡ;;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놈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기구'로 순식간에 변해버립니다.

어떤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3일 밤낮을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지새워 보신적 있습니까?

전화번호를 받아갔는데 왜 연락을 하지 않을까?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미안해요, 지금 쫌 바뻐서 이따가 전화 드릴께요" 라고 끊고 나서
며칠째 연락도 없으면 돌아 버립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싫은가?
온갖 상상을 해가며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누가 나를 괴롭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화라는 놈...

'기다린다' 라는 느낌...
기약없는 기다림 막막함
무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시간들
1분이 한시간처럼 느껴지는 늘어지는 시간의 흐름...


눈 가쁘게 변해가는 속도의 노이로제에 걸린 현대인들에게
전화라는 놈처럼 기다림의 괴로움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는 20세기의 발명품은 없습니다.

예전엔 전화로 수다 잘 떨었습니다.
전화 붙들고 날 새는거 예사...
정말 머 그리 할 얘기들이 많았는지 ^^
회사 첨 다닐때까지만 해도 집에 오면 2~3시간 전화통 붙잡고 이넘 저넘이랑 떠드는게 일과였져.


그치만 어느 순간 부터 전화로 떠들기가 싫어졌습니다.
'생각'이랑 '말' 이란 놈은 하면 할 수록 나쁜쪽으로만 가는 놈입니다.
내 뱉은 말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 변명하고, 거짓말 하고, 보태고...
그러다가 또 딴 주제로 흘러 들어가 딴소리 하고...

전 통신 수단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통신 능력' 은 점점 퇴화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서로의 눈길속에서 오가는 사랑의 이야기를,
서로의 마음끼리 공명하는 소리를,
마주잡은 두 손으로 뜨겁게 통하는 얘기를...

그런 것들을 이제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소개팅 하면 이름이랑 전화번호 받는거이 정석인데요.
저 나름의 전화번호 관리 방법 있습니다.
꽤 쓸만합니다 ^^

전 소개팅할 사람 이름이랑 전화번호 받으면
핸펀에 저장하거나 주소록에 적어놓거나 그런 짓 안합니다.
그냥 외웁니다.

전에도 얘기했던 것 처럼 이름 한번 불러보고

그렇게 만나다가
전화번호 생각 안나면 끝입니다.

이러구 나면
'아직도 핸펀에 니 이름 지우지도 못하고 있어~'
이딴 바보 같은 소리 할 일은 없져


하지만 더 무서운게 뭔지 아십니까?

이미 생각도 안나는 전화번호인데
전화기 위에 얹혀 있는 손끝은 그사람의 전화번호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이제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손가락은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손가락이 그 번호를 잊기까지

3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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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Q" 는 "Quizas, Quizas, Quiza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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