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니어스의 辨明] A : Accident
old/old_column 2003. 11. 5. 01:09
영화 트루로맨스의 두 주인공 '클레런스'와 '알라바마' 는
소니 치바 주연의 'Street Fighter'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알라바마가 팝콘통을 들고가다 클레런스의 바지에 온통 쏟아 버리죠.
사과를 하는 알라바마에게 클레런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Clarence : "That's okay. Accident happens."
                (괜찮아요. 사고는 일어나는 법이죠.)
Alabama : "Wow! What a wonderful philosophy !!"
                (와우. 정말 멋진 생각이군요 !!)

그렇습니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소개팅은 이런 사고가 터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된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안전운행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고 함 내라고 모아 놓는 들
별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그나마 겁없던 어린 시절에야 사고 자주 납니다.
스스로의 감정에, 상대방에 미숙하니까요.

그렇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소개팅은 형식적이고, 따분한 자리가 되어버리더군요.
처음 봤지만 10년 지기를 만난듯 의기투합하는 일도 사라졌고
다들 차림새와 말솜씨를 재며 이 사람을 만나 볼까 말까 머리 굴리는 지루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 맘에 안 들더라도, 능숙하게 자리를 불편하지 않게 정리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맘에 안들었다고 주선을 들들 볶는 일도 없습니다.

맘에 드는 친구가 나타난다고 해도,
하루 이틀 연락이 미뤄져 버리면 또 새삼스레 연락하기도 그렇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렇게 스쳐 버린 인연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 가벼워 지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제는 그만 해야 될 때가 됐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라는 책에
저의 뒷통수를 때리고 지나간 (아직도 얼얼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연애에서는 모험이 헤게모니를 잃었다. 이제 벌어지는 사건은 등장인물의
내적 상태의 반영일 수 없다. 클로이와 나는 현대인들이고, 모험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적 독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는 낭만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부모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정글은 길들여 졌다. 사회는 일반적 관용 뒤에
못마땅한 태도를 숨기고 있다. 식당은 늦게까지 문을 연다. 거의 어디에서나 신용카드를
받는다. 섹스는 범죄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그래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우리의 결합을
확인해줄 이야기, 공동의 역사가 있었다. (과거의 무게가 종종 무게 없는 현재를 짓누르기는
했었지만......)"

그렇습니다. 이제 정글은 길들여 졌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서 알랭 드 보통은 '모험'을 잃었다고 썼지만
저는 '사고(Accident)'가 사라졌다고 이야기 하고 싶군요.

이제 다들 겁나게 안전운행입니다.

내가 상처받는 일 없게, 상대편이 다치는 일 없게.
맘에 들던, 들지 않던 자기의 속마음을 감추고
가식과 위선으로 덧칠한 '교양있는 척'일 뿐입니다.

저도 거기서 자유롭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닙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모험'이 없는, '사고(Accident)'가 없는 소개팅 매너리즘 맨이 되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일전에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사고 발생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움하하핫...



네! 바로 이겁니다 !!

"지나친 음주는 ... 작업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집에 일찍 가지 마십시오.
몸사리며 술 마시지 마십시오.
길거리를 방황하십시오.


"사고는 일어나게 되있습니다.(Accident hap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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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거야" - 노희경님의 드라마 '거짓말' 에서 윤여정님의 대사입니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청미래 출판사 | 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 | 2003 년
* 사진 모델은 꿍쳐놓은 "山" 입니다.

* 다음편 'B' 는 Beauty 편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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